대우중공업 옥포조선소의 엄태철(37)씨는 생산현장에서 보기 드문 메모광.

뭔가 특이한 작업조건을 접하면 노트부터 꺼내든다.

"선배들로부터 엔진을 정밀가공하는 보링기술을 빨리 배우고픈 욕심에
시작한 메모가 소중한 자산이 됐어요"

엄씨는 뱃속까지 울리는 조선소의 기계음도 이제는 메모를 하는데 방해가
되지 못할 경지에 이르렀단다.

그가 기전시운전부에서 하는 일은 메인엔진과 축 등을 설치하고 보링하는
작업.

수십t에서 수백t에 이르는 기자재를 정밀가공하는 것으로 조선소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공정이다.

이때문에 똑같은 선형의 선박이 건조되더라도 작업과정에서 부딛치는 작업
조건은 다르게 마련이다.

그는 이처럼 수없이 다양한 조건들을 노트에 담아 작업효율을 높이는
활용해 왔다.

이렇게 만들어진 노트만도 수십권.

이 노트가 이제는 보링기술을 배우고 있는 후배들에게 참고서가 되고 있다.

"저의 메모는 동종의 선박을 여러척 건조하는 시리즈선을 건조할 때 진가를
발휘합니다"

그는 후속선을 건조할 때 자신의 메모를 넘겨주면 생산성이 급격히 향상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77년 조선공사에 입사해 보링을 배우기 시작한 엄씨는 81년 대우조선
으로 옮겨 "1호선"제작부터 참여해 옥포조선소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18년간의 깨알같은 메모를 바탕으로 개선점을 찾아온 덕분에
93년에는 옥포조선소의 꽃으로 불리는 "장인"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같은해 한국능률협회가 주관하는 기술분임조 경진대회에서는 1백50t무게의
프로펠러와 라다를 자동으로 설치하는 설비를 제안,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포부는 소박하면서도 힘있게 들린다.

"틈나는데로 저의 메모를 다듬어 작업표준서를 만들 작정입니다. 나부터
최고가 돼야 대우에서 만드는 선박이 최고가 돼죠"

< 김수섭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