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한담] 21C엔 개별기업이 세계경제 주도..이경식 회장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세계무역기구(WTO)출범에 이어 노동 지구환경등 새로운 이슈가 계속
등장하면서 기업들의 경영여건은 하루가 멀게 달라지고 있다.
코앞에 닥쳐온 21세기는 또 뭐가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기업에선 ''미래경영''의 불안감을 떨칠수 없는게 오늘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10년전부터 ''미래지향 적극경영''을 모토로 21세기
경영인클럽이란 모임을 이끌고 있는 이경식회장(62)을 만나봤다.
그는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 재임중에도 다른 직함은 다 내놓았지만
21세기 클럽회장직만은 계속 유지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이 모임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이회장은 한은조사부에서 시작해 경제기획원 기획국장,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거쳐 대우자동차사장, 가스공사사장을 역임하는
등 ''민과 관''을 두루 섭렵한 다채로운 경력의 소유자다.
-부총리 재임때보다 얼굴이 더 좋아 보이십니다.
<> 이회장 =스트레스를 안받으니까 그렇게 보이나 봅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체중이 불어나고 안색은
나빠지거든요.
-활동이 많으신 걸로 듣고 있습니다만.
<> 이회장 =대학에 강의나가고 21세기 경영인클럽 일에 힘을 쏟고
있지요.
-대학에선 어떤 내용의 강의를 하십니까.
<> 이회장 =고려대에서 기업 환경론을 가르치고 중앙대 국제경영대학원
에선 한국경제론을 강의합니다. 외부 특강요청까지 포함하면 보통 1주일에
3번정도 강의를 나가는 셈이지요.
-기업 환경론이라면 주로 어떤 내용입니까.
<> 이회장 =한마디로 기업과 경영환경간의 상관관계를 다루는 학문이지요.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과연 기업경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기업은 여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또 경영환경은 그동안 어떤 경로로 변해왔고 앞으로는 어떻게 변할것인가
등도 연구 대상이지요.
한발 더 나아가 경영환경을 기업 자신에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는 방법
등도 기업환경론의 영역이지요.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학문분야 아닙니까.
<> 이회장 =그렇습니다. 이런 강좌가 국내대학에 개설된 것은 불과
5~6년밖에 안됩니다. 미국에서도 겨우 10여년전부터 연구되기 시작한
분야입니다. 그러니 일반인들에게 익숙지 않은건 당연하지요.
-아닌게 아니라 과거엔 문제가 안됐던 공해 노동 소비자보호등이
이슈로 달아 오르는등 최근의 기업경영 환경은 급변하다 못해 격변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지금 회장을 맡고계신 21세기 경영인클럽도 이런 상황을 예견해
만드신것 아니겠습니까.
<> 이회장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기업이야말로 주위 여건변화에
특히 민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던건 사실입니다. 변화에 무딘
기업은 살아남을수 없다는게 제 지론이지요.
지난 60년대초 매출 1백대 기업들을 한번 보세요. 이들중 아직까지
1백대 리스트에 남아 있는 기업은 손에 꼽힐 정도입니다. 흔적조차
없어진 기업들도 많아요.
살아 남느냐,못살아 남느냐의 관건은 변화에 대한 적응여부라고
봅니다.
기업들이 이런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할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보자는 생각에서 전문 경영인들을 중심으로 모임을 만들었지요.
그게 지난 85년이니까 꼭 10년이 됐습니다만 그동안 매월 한번씩
전문가를 초청,조찬 강연회등을 하다보니 회원도 5백여명으로
불어났습니다.
-21세기 경영인클럽 회장으로서 2000년대 경영환경은 어떻게 바뀔
것으로 보십니까.
<> 이회장 =크게 두가지 방향의 변화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우선 산업의 고도화입니다. 산업구조가 점차 고부가가치화 정보화
돼간다는거지요. 또 하나 큰 변화는 국제화입니다. 아마 그때쯤엔
이미 국제화나 세계화란 단어도 없어질지 모릅니다.
국가 단위의 경제체제는 퇴색하고 국적과 관계없이 개별 기업들이
세계경제를 주도해가는 시대가 돼 있을 거라는 말이지요.
-기업들엔 그만큼 경영 리스크가 커지겠지요.
<> 이회장 =기존기업의 대량도산을 예상할수 있겠지요.
도산속도도 빨라질거고.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면서 새로운 산업의
진입이 많아지는데다 경쟁상대도 국내뿐아니라 세계각국의 기업들로
확대될테니 당연한 이치아니겠습니까.
물론 경쟁의 이점도 있습니다. 경쟁에서 이기면 시장이 넓어진다는
점이지요.
-그렇다면 기업들이 이런 여건변화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이회장 =뭐니뭐니 해도 공부를 해야합니다. 다가올 변화에 미리
대비하려면 우선 변화의 실체와 방향에 대해 깊이 연구하는게
필수적입니다.
그런데도 한국기업들은 변화의 내용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지방화를 봅시다. 앞으로 지방화시대가 오면 마치 자기 지방의
시장은 자기들이 독점할 것이라고 믿는 지방기업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건 큰 오산이지요. 지방화 시대엔 오히려 그 반대의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많은 것 아닙니까. 지방화의 진정한 의미는 경쟁에 더
노출된다고 봐야 옳습니다.
-이회장께서는 지난 93년 부총리 시절에도 "공부 안하는 국민"을
나무라신 적이 있는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금융실명제나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등으로 시끄러울 때였지요.
"이미 몇해전부터 이슈가 됐던 문제를 갖고 평소엔 신경을 안쓰다가
막상 눈앞에 닥치니까 이러쿵 저러쿵한다"며 국민들의 근시안적
행태를 문제로 지적하셨지요.
5년뒤 21세기가 막상 닥쳐오면 그때가서 또 21세기가 어쩌니 저쩌니
하며 야단법석을 떨것 같기만 한데요.
<> 이회장 =그래도 그때하고 지금은 꽤나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대기업들이 21세기를 대비하며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는걸 보면
많이 변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예전엔 다국적 기업이라고 하면 국내에 들어오는 외국기업만을 머리속에
떠올렸는데 이제는 국내 대기업들이 바로 그런 다국적 기업이 돼버리지
않았습니까. 기업들 스스로 세계화하고 있는 셈이지요.
재미있는건 이같은 기업 세계화가 아이러니컬하게도 급속한 국내
임금상승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하는 점입니다.
지난 80년대말이후 짧은 기간동안 껑충 뛰어오른 임금이 국내기업들을
외국으로 내몰고 있다는 겁니다.
-금융실명제나 UR와 달리 세계화에 관해선 국민들이 공부를 많이
하고 있다고 보시는것 같은데 1~2년 사이에 그렇게 달라질 수가
있나요.
<> 이회장 =세계화는 성격 자체부터가 다릅니다. 실명제나 UR때처럼
국민이나 기업들 사이에 찬반 논란이 없다는 점에서 그렇지요.
실명제나 UR는 대개 이익을 보는 부문과 손해를 보는 부문이 명확히
갈려 서로 찬반 논쟁이 뜨거웠지요. 그러나 세계화에 관해선 반론이
없지 않습니까.
한국경제의 선진화를 위해선 세계화가 불가피하다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어느정도 형성돼 있다고 봐야겠지요.
모두가 동감하고 있기 때문에 자발적인 참여가 가능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게된 것이지요.
-기업들이 스스로 공부하고 열심히 뛰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요.
<> 이회장 =산업정책이나 규제행정등에서 정부의 전통적인 역할이
줄어들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행정규제만 하더라도 이젠 "완화"가 아니라 "철폐"쪽으로 나가야죠.
그렇다고 정부가 할일이 없어지는건 아닙니다.
환경 교육 소비자보호등 새로운 영역이 생겨나고 있지 않습니까.
내용이 바뀌었을 뿐이지 정부가 해야할 일의 양은 오히려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부총리 재임시절 공기업 민영화를 강조하신걸로 압니다만.
<> 이회장 =그렇습니다. 특수한 목적에서 반드시 정부가 경영해야 하는
경우를 빼고는 공기업은 모두 민영화해야 한다는게 제 지론입니다.
중남미의 경제개혁이나 동구등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개혁등을
보세요. 핵심은 어디까지나 공기업 민영화 아닙니까. 이유는 뻔해요.
공기업은 속성상 경쟁력이 떨어지게 돼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민간기업도
경영해 봤고 공기업 사장도 맡아본 경험이 있습니다.
이들 기업간의 근본적인 차이가 뭔지 아십니까.
민간회사 경영자의 뇌리엔 "경영을 잘못하면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지요. 이게 공기업과 가장 큰 차이입니다.
국민경제 전체의 효율을 위해 공기업을 민영화해햐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 소신을 계속 펴기 위해서 21세기 경영인클럽을 활용하실 생각은
없습니까. 예를들어 정부에 대해 정책대안을 제시하고 건의하는 경제단체
처럼 말입니다.
<> 이회장 =그럴 계획은 없습니다. 어떤 집단이고 자기 목소리를
내다보면 색깔이 들어가게 마련이지요. 그러다 보면 본래의 모임
취지를 벗어나기 십상이고요.
21세기 경영인 클럽은 경영인들이 어떻게 하면 기업을 잘 경영할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모임인 만큼 본래 성격을 유지하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 경영인 클럽을 10년이나 이끌어온 경험에 비춰 보면 어떤
유의 경영인이 운영하는 기업이 잘 되던가요. 발전하는 기업들의 경영인
에겐 무슨 공통점 같은게 있을 것도 같은데요.
<> 이회장 =있지요. 역시 클럽활동을 열심히 하는 경영인들이
기업경영도 잘하더라구요. (웃음)
실제로 매월 한번씩 하는 조찬간담회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며 뭔가
하나라도 공부하려는 경영인이 기업경영을 잘하더라는 겁니다.
-민과 관에 골고루 있었던 경험을 토대로 회고록 같은 책이라도
하나 쓰시지요.
<> 이회장 =아직 회고록을 생각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회고록은 쓰고난 한참 뒤에도 생각이 바뀌지 않을만큼 마음이 담담해져야
쓰는건데 아직 그럴 자신이 없어요.
다만 여건이 허락하면 "한국경제 발전사"를 한번 저술해 보고 싶은
욕심은 있습니다.
경제개발연대부터 정부와 기업에서 일해온 사람으로서 한국경제의
발전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고 싶습니다.
책이라면 좋고 작은 논문이라도 괜찮겠지요.
< 대담=유화선산업1부장 >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16일자).
등장하면서 기업들의 경영여건은 하루가 멀게 달라지고 있다.
코앞에 닥쳐온 21세기는 또 뭐가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기업에선 ''미래경영''의 불안감을 떨칠수 없는게 오늘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10년전부터 ''미래지향 적극경영''을 모토로 21세기
경영인클럽이란 모임을 이끌고 있는 이경식회장(62)을 만나봤다.
그는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 재임중에도 다른 직함은 다 내놓았지만
21세기 클럽회장직만은 계속 유지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이 모임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이회장은 한은조사부에서 시작해 경제기획원 기획국장,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거쳐 대우자동차사장, 가스공사사장을 역임하는
등 ''민과 관''을 두루 섭렵한 다채로운 경력의 소유자다.
-부총리 재임때보다 얼굴이 더 좋아 보이십니다.
<> 이회장 =스트레스를 안받으니까 그렇게 보이나 봅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체중이 불어나고 안색은
나빠지거든요.
-활동이 많으신 걸로 듣고 있습니다만.
<> 이회장 =대학에 강의나가고 21세기 경영인클럽 일에 힘을 쏟고
있지요.
-대학에선 어떤 내용의 강의를 하십니까.
<> 이회장 =고려대에서 기업 환경론을 가르치고 중앙대 국제경영대학원
에선 한국경제론을 강의합니다. 외부 특강요청까지 포함하면 보통 1주일에
3번정도 강의를 나가는 셈이지요.
-기업 환경론이라면 주로 어떤 내용입니까.
<> 이회장 =한마디로 기업과 경영환경간의 상관관계를 다루는 학문이지요.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과연 기업경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기업은 여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또 경영환경은 그동안 어떤 경로로 변해왔고 앞으로는 어떻게 변할것인가
등도 연구 대상이지요.
한발 더 나아가 경영환경을 기업 자신에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는 방법
등도 기업환경론의 영역이지요.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학문분야 아닙니까.
<> 이회장 =그렇습니다. 이런 강좌가 국내대학에 개설된 것은 불과
5~6년밖에 안됩니다. 미국에서도 겨우 10여년전부터 연구되기 시작한
분야입니다. 그러니 일반인들에게 익숙지 않은건 당연하지요.
-아닌게 아니라 과거엔 문제가 안됐던 공해 노동 소비자보호등이
이슈로 달아 오르는등 최근의 기업경영 환경은 급변하다 못해 격변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지금 회장을 맡고계신 21세기 경영인클럽도 이런 상황을 예견해
만드신것 아니겠습니까.
<> 이회장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기업이야말로 주위 여건변화에
특히 민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던건 사실입니다. 변화에 무딘
기업은 살아남을수 없다는게 제 지론이지요.
지난 60년대초 매출 1백대 기업들을 한번 보세요. 이들중 아직까지
1백대 리스트에 남아 있는 기업은 손에 꼽힐 정도입니다. 흔적조차
없어진 기업들도 많아요.
살아 남느냐,못살아 남느냐의 관건은 변화에 대한 적응여부라고
봅니다.
기업들이 이런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할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보자는 생각에서 전문 경영인들을 중심으로 모임을 만들었지요.
그게 지난 85년이니까 꼭 10년이 됐습니다만 그동안 매월 한번씩
전문가를 초청,조찬 강연회등을 하다보니 회원도 5백여명으로
불어났습니다.
-21세기 경영인클럽 회장으로서 2000년대 경영환경은 어떻게 바뀔
것으로 보십니까.
<> 이회장 =크게 두가지 방향의 변화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우선 산업의 고도화입니다. 산업구조가 점차 고부가가치화 정보화
돼간다는거지요. 또 하나 큰 변화는 국제화입니다. 아마 그때쯤엔
이미 국제화나 세계화란 단어도 없어질지 모릅니다.
국가 단위의 경제체제는 퇴색하고 국적과 관계없이 개별 기업들이
세계경제를 주도해가는 시대가 돼 있을 거라는 말이지요.
-기업들엔 그만큼 경영 리스크가 커지겠지요.
<> 이회장 =기존기업의 대량도산을 예상할수 있겠지요.
도산속도도 빨라질거고.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면서 새로운 산업의
진입이 많아지는데다 경쟁상대도 국내뿐아니라 세계각국의 기업들로
확대될테니 당연한 이치아니겠습니까.
물론 경쟁의 이점도 있습니다. 경쟁에서 이기면 시장이 넓어진다는
점이지요.
-그렇다면 기업들이 이런 여건변화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이회장 =뭐니뭐니 해도 공부를 해야합니다. 다가올 변화에 미리
대비하려면 우선 변화의 실체와 방향에 대해 깊이 연구하는게
필수적입니다.
그런데도 한국기업들은 변화의 내용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지방화를 봅시다. 앞으로 지방화시대가 오면 마치 자기 지방의
시장은 자기들이 독점할 것이라고 믿는 지방기업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건 큰 오산이지요. 지방화 시대엔 오히려 그 반대의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많은 것 아닙니까. 지방화의 진정한 의미는 경쟁에 더
노출된다고 봐야 옳습니다.
-이회장께서는 지난 93년 부총리 시절에도 "공부 안하는 국민"을
나무라신 적이 있는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금융실명제나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등으로 시끄러울 때였지요.
"이미 몇해전부터 이슈가 됐던 문제를 갖고 평소엔 신경을 안쓰다가
막상 눈앞에 닥치니까 이러쿵 저러쿵한다"며 국민들의 근시안적
행태를 문제로 지적하셨지요.
5년뒤 21세기가 막상 닥쳐오면 그때가서 또 21세기가 어쩌니 저쩌니
하며 야단법석을 떨것 같기만 한데요.
<> 이회장 =그래도 그때하고 지금은 꽤나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대기업들이 21세기를 대비하며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는걸 보면
많이 변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예전엔 다국적 기업이라고 하면 국내에 들어오는 외국기업만을 머리속에
떠올렸는데 이제는 국내 대기업들이 바로 그런 다국적 기업이 돼버리지
않았습니까. 기업들 스스로 세계화하고 있는 셈이지요.
재미있는건 이같은 기업 세계화가 아이러니컬하게도 급속한 국내
임금상승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하는 점입니다.
지난 80년대말이후 짧은 기간동안 껑충 뛰어오른 임금이 국내기업들을
외국으로 내몰고 있다는 겁니다.
-금융실명제나 UR와 달리 세계화에 관해선 국민들이 공부를 많이
하고 있다고 보시는것 같은데 1~2년 사이에 그렇게 달라질 수가
있나요.
<> 이회장 =세계화는 성격 자체부터가 다릅니다. 실명제나 UR때처럼
국민이나 기업들 사이에 찬반 논란이 없다는 점에서 그렇지요.
실명제나 UR는 대개 이익을 보는 부문과 손해를 보는 부문이 명확히
갈려 서로 찬반 논쟁이 뜨거웠지요. 그러나 세계화에 관해선 반론이
없지 않습니까.
한국경제의 선진화를 위해선 세계화가 불가피하다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어느정도 형성돼 있다고 봐야겠지요.
모두가 동감하고 있기 때문에 자발적인 참여가 가능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게된 것이지요.
-기업들이 스스로 공부하고 열심히 뛰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요.
<> 이회장 =산업정책이나 규제행정등에서 정부의 전통적인 역할이
줄어들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행정규제만 하더라도 이젠 "완화"가 아니라 "철폐"쪽으로 나가야죠.
그렇다고 정부가 할일이 없어지는건 아닙니다.
환경 교육 소비자보호등 새로운 영역이 생겨나고 있지 않습니까.
내용이 바뀌었을 뿐이지 정부가 해야할 일의 양은 오히려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부총리 재임시절 공기업 민영화를 강조하신걸로 압니다만.
<> 이회장 =그렇습니다. 특수한 목적에서 반드시 정부가 경영해야 하는
경우를 빼고는 공기업은 모두 민영화해야 한다는게 제 지론입니다.
중남미의 경제개혁이나 동구등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개혁등을
보세요. 핵심은 어디까지나 공기업 민영화 아닙니까. 이유는 뻔해요.
공기업은 속성상 경쟁력이 떨어지게 돼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민간기업도
경영해 봤고 공기업 사장도 맡아본 경험이 있습니다.
이들 기업간의 근본적인 차이가 뭔지 아십니까.
민간회사 경영자의 뇌리엔 "경영을 잘못하면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지요. 이게 공기업과 가장 큰 차이입니다.
국민경제 전체의 효율을 위해 공기업을 민영화해햐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 소신을 계속 펴기 위해서 21세기 경영인클럽을 활용하실 생각은
없습니까. 예를들어 정부에 대해 정책대안을 제시하고 건의하는 경제단체
처럼 말입니다.
<> 이회장 =그럴 계획은 없습니다. 어떤 집단이고 자기 목소리를
내다보면 색깔이 들어가게 마련이지요. 그러다 보면 본래의 모임
취지를 벗어나기 십상이고요.
21세기 경영인 클럽은 경영인들이 어떻게 하면 기업을 잘 경영할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모임인 만큼 본래 성격을 유지하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 경영인 클럽을 10년이나 이끌어온 경험에 비춰 보면 어떤
유의 경영인이 운영하는 기업이 잘 되던가요. 발전하는 기업들의 경영인
에겐 무슨 공통점 같은게 있을 것도 같은데요.
<> 이회장 =있지요. 역시 클럽활동을 열심히 하는 경영인들이
기업경영도 잘하더라구요. (웃음)
실제로 매월 한번씩 하는 조찬간담회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며 뭔가
하나라도 공부하려는 경영인이 기업경영을 잘하더라는 겁니다.
-민과 관에 골고루 있었던 경험을 토대로 회고록 같은 책이라도
하나 쓰시지요.
<> 이회장 =아직 회고록을 생각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회고록은 쓰고난 한참 뒤에도 생각이 바뀌지 않을만큼 마음이 담담해져야
쓰는건데 아직 그럴 자신이 없어요.
다만 여건이 허락하면 "한국경제 발전사"를 한번 저술해 보고 싶은
욕심은 있습니다.
경제개발연대부터 정부와 기업에서 일해온 사람으로서 한국경제의
발전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고 싶습니다.
책이라면 좋고 작은 논문이라도 괜찮겠지요.
< 대담=유화선산업1부장 >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