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단군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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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의 시조로 받드는 단군(단군 왕검 또는 단웅천왕)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중국의 위서와 우리나라 고기를 인용한 삼국유사를 들수 있다.
삼국유사는 고려조 후기의 고승 일연이 충렬왕7년(1281년)께 편찬한 사서로
같은 고려조때 김부재이 편찬한 정사 삼국사기에는 그 같은 내용의 기록
이었다.
그밖에 단군에 대한 고려시대 기록으로는 이승채의 제왕운기가 있을
뿐이다.
해방후 남한의 역사학계는 단군관계의 연구에 있어서 대체로 단군을
신화적인 존재로 보고 단군신화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고찰하였다.
하나는 고조선의 한 종족의 신화이던 것이 삼국통일과 고려시대의
대몽항쟁등으로 민족의식이 고조되면서 우리 민족의 시조신화로 변해갔다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신화를 달리하는 두 종족이 정치.사회적으로 통합
되었을때 두 종족의 시조신화가 혼재하게 된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등이다.
반면에 북한은 48년9월, 북한정권의 성립과 함께 진행된 사회주의적 국가
채제확립의 일환으로 역사의 체계화,즉 마르크스-레니주의에 입각한 한국사
의 정리작업이 시작되었다.
56년판 "조선통사(상)"을 보면 고조선의 우리민족을 고조선 종족, 고구려
종족부여 종족, 옥리 종족, 예맥 종족, 마한 종족, 진한 종족, 변한 종족
등으로 표현하여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파악하지도 않고 있다.
"조선 준민족"의 형성을 삼국 통일의 산물로 보는 형편이니 북한역사에서
민족의 시조 단군이란 있을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평양에 단군릉을 건설하고 단군의 등선일이라는
3월15일을 어천절이라고 하여 행사를 개최한다는 것은 정치적인 공작차원
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역사적으로 평양에 단군과 고구려의 시조 동명왕의 사당을 짓고 함께
모시게된 것은 조선조 세종때의 일에 불과하므로 역사가 깊은것도 아니다.
안호상씨는 정부수립이후 초대 문교부장관을 지낸 우리사회의 원로이다.
현재 그는 단군을 교조로 모시는 대종교의 총전교라는 자리에 있다고
하지만 북한측의 초청으로 우리정부의 허가없이 방북하였다는 사실은 믿기지
않는 일이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원로 종교지도자들이나 학자들과의 자리에서 북한의
단군릉은 허구라는 사실을 인정하였다지 않는가.
그런데도 국법을 어기면서까지 단군등 참배를 하였다는 것은 이해할수
없는 일이다.
우리사회에 필요한 것은 원로다운 원로가 아닌가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18일자).
기록은 중국의 위서와 우리나라 고기를 인용한 삼국유사를 들수 있다.
삼국유사는 고려조 후기의 고승 일연이 충렬왕7년(1281년)께 편찬한 사서로
같은 고려조때 김부재이 편찬한 정사 삼국사기에는 그 같은 내용의 기록
이었다.
그밖에 단군에 대한 고려시대 기록으로는 이승채의 제왕운기가 있을
뿐이다.
해방후 남한의 역사학계는 단군관계의 연구에 있어서 대체로 단군을
신화적인 존재로 보고 단군신화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고찰하였다.
하나는 고조선의 한 종족의 신화이던 것이 삼국통일과 고려시대의
대몽항쟁등으로 민족의식이 고조되면서 우리 민족의 시조신화로 변해갔다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신화를 달리하는 두 종족이 정치.사회적으로 통합
되었을때 두 종족의 시조신화가 혼재하게 된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등이다.
반면에 북한은 48년9월, 북한정권의 성립과 함께 진행된 사회주의적 국가
채제확립의 일환으로 역사의 체계화,즉 마르크스-레니주의에 입각한 한국사
의 정리작업이 시작되었다.
56년판 "조선통사(상)"을 보면 고조선의 우리민족을 고조선 종족, 고구려
종족부여 종족, 옥리 종족, 예맥 종족, 마한 종족, 진한 종족, 변한 종족
등으로 표현하여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파악하지도 않고 있다.
"조선 준민족"의 형성을 삼국 통일의 산물로 보는 형편이니 북한역사에서
민족의 시조 단군이란 있을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평양에 단군릉을 건설하고 단군의 등선일이라는
3월15일을 어천절이라고 하여 행사를 개최한다는 것은 정치적인 공작차원
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역사적으로 평양에 단군과 고구려의 시조 동명왕의 사당을 짓고 함께
모시게된 것은 조선조 세종때의 일에 불과하므로 역사가 깊은것도 아니다.
안호상씨는 정부수립이후 초대 문교부장관을 지낸 우리사회의 원로이다.
현재 그는 단군을 교조로 모시는 대종교의 총전교라는 자리에 있다고
하지만 북한측의 초청으로 우리정부의 허가없이 방북하였다는 사실은 믿기지
않는 일이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원로 종교지도자들이나 학자들과의 자리에서 북한의
단군릉은 허구라는 사실을 인정하였다지 않는가.
그런데도 국법을 어기면서까지 단군등 참배를 하였다는 것은 이해할수
없는 일이다.
우리사회에 필요한 것은 원로다운 원로가 아닌가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