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 5월 잉창치(응창기)배를 시작으로 올해 2월 진로배까지 2년여동안
세계대회를 석권하던 한국바둑이 균열의 조짐을 보이고있다.

3월의 동양증권배에서 중국기사들에게 안방을 내주더니 4월 후지쯔배
에서는 유창혁육단만 8강에 진출했다.

두대회는 4인방에 의존하는 한국바둑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갑작스런 한국바둑의 난조에 대해 반응은 두갈래로 나뉜다.

"늘 이길수만은 없지 않느냐"며 담담히 다음번을 기약하는 부류와
지금까지 실력이상의 성적을 내왔다며 "지는것이 일면 당연한 감이
있다"는 부류이다.

한국바둑에 대해 중국과 일본기사들이 충분히 연구해 더이상의 독주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느부류이건간에 변화가 필요하다는데는 의견일치다.

먼저 정상급기사들의 과다한 대국일정을 조정해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배달왕기전 우승인터뷰에서 이창호칠단은"연간 80국 정도면 소화할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 조훈현구단의 대국수는 112국.43세라는 조구단의
나이를 감안하면 엄청난 대국수이다.

일본정상급기사들의 94년 대국수가 40-50국(조치훈 52국,고바야시
고이치 49국,고바야시 사토루 41국)정도니까 2배가 훨씬 넘는다.

대국수를 줄이기 위해 군소기전의 통합을 생각해볼수 있다.

일본에서는 서열5위 천원전을 신문3사가 연합으로 주최하고 있다.

기전서열을 정하는 것도 차제에 고려해야할 문제다.

일본은 상큼랭킹으로 7대기전을 정하고 있고 중국도 전통과 권위에
의한 나름대로의 서열이 있다.

우리는 기전서열이 없어 정상급기사들도 마구잡이로 출전을 한다.

자연히 무리한 대국일정에 쫓기고 좋은 기보도 남기지 못한다.

알다시피 이창호는 전관왕이란 목표를 세우고 결전에 임했지만 실패하고
상처만 입었다.

서열이 정해지면 상위기전만 참가해 더좋은 성적을 내고 국제대회에도
충분히 대비할 수 있을것이다.

다음으로 4인방에만 의존하지 말고 재능있는 신예들을 적극 양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일본은 신인왕전,신예토너먼트전,NEC준영배등 3개의 신예기전이
있다.

참가자격은 30살이하,팔단이하,타이틀비보유자에게만 주어진다.

신예들끼리의 대국을 통해 경쟁을 유발하고 승부감각도 익힐수 있다.

대국수입도 올라 바둑공부에 더 몰두할수 있을 것이다.

최근 MBC제왕전 결승에 진출한 김성룡삼단,26승4패로 승률. 다승1위인
이성재이단,이창호의 기재를 능가한다는 목진석초단등 출중한 신예들이
많아 약간의 배려(?)만 있으면 큰재목이 될 것임은 누구나 동의하는
사실이다.

신예기전으로 몇년전 프로신왕전이라는 타이틀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졌다.

그렇지만 하위기전을 신예대항전으로 돌리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대회에 신예를 자주 출전시키는 것도 미래를 위한 투자가 된다.

한국기원관계자는 "세계대회참가당시 성적우수신예 1-2명에게 출전권을
주는 방안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큰대회 경험이 본인의 기력향상에 도움이 됨은 최근 여성기사들의
선전에서도 확인된다.

"무엇을 할것인가" - 한국바둑의 장래를 위해 던져진 질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