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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골프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매일 연습하고, 1주일에 서너번은 치고, 자나깨나 골프 생각만 하며
"나보다 더 골프 좋아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하는 골퍼들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까.

이 세상엔 워낙 "더 깊이 들어간 사람"이 많은 법이다.

다음은 실화인데 그 골프생각의 "수준"이나 "목표"가 한단계 앞서가는
것 같아 소개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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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의 골프친구가 있었다.

그들은 동창도 아니고 선후배관계도 아닌 전적으로 골프를 통해
알게된 사람들이다.

10여년전 그들은 단지 골프장가기가 쉽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광장동의
"워커힐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들의 공통된 목표는 "입신"이었다.

입신이 무엇인가.

십수년전 그들이 처음 만났을때 다음과 같이 의견일치를 보았다.

"바둑도 9단이 되면 입신이라고 한다.

그러면 골프의 입신은 무엇인가.

골프의 영원불멸한 목표는 파이다.

우리는 프로골퍼도 아니고 단지 골프를 좋아하는 아마추어. 그런
아마골퍼의 입신은 파플레이라고 말할수 밖에 없다.

이왕 골프를 사랑하게끔 운명지어졌다면 이븐파 72타는 쳐야 골퍼로서의
자격이 있는것 아닐까. 이제부터 우리는 이븐파를 입신으로 정의하자"

물론 그들 네명은 시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 입신을 경험했다.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할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골프과정은 또 다른 얘깃거리를 제공한다.

그들은 라운드후에 "복플레이"를 한다.

그것은 바둑의 복기와 조금도 다를바 없다.

그들은 18홀 전부에서 상대방들의 샷 하나하나를 모두 기억하고
라운드후 그것을 가지고 토론한다.

"자네 2번홀 세컨드 샷이 그린을 오버했지. 방향도 왼쪽으로 다소
치우쳤고. 그때 자네볼의 라이는 왼발쪽이 약간 낮았고 풀속에 파묻혀
있는 형태였어. 그런데도 자네는 그냥 핀을 겨냥하더라구. 그런 상황
에서는 탄도가 낮고 왼쪽으로 꺾이는 구질이 불가피한데 말이야"

"그래. 자네 지적이 맞아. 하지만 난 자네가 7번홀에서 2m버디퍼트를
실패한게 이상해. 경사도 거의 없는 스트레이트 라인이었는데 자넨
의식적으로 오른쪽으로 밀더군. 그것은 아마 그 전홀에서의 쇼트퍼트가
왼쪽으로 빠지며 3퍼트한게 작용한 것이 아닐까"

이런식으로 "복플레이"를 하니 토론시간이 서너시간은 후딱 지나가기
십상이다.

또 상대의 스윙이건 전략이건 모든 잘잘못들이 신랄히 분석되니 모두의
골프가 견고해 지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만나면 골프이외에는 끼어들 틈이 없다.

그들은 단 한번도 사업이나 가정, 술, 여자얘기를 한 적이 없다.

오로지 골프뿐인데 대화의 주제도 "세계정상급골프의 분석"이 주류를
이룬다.

"프레드 커플스가 장갑을 안끼고 스윙하는 것은 여섯살때 커플스의
손에 맞는 장갑이 없었다는데 연유한다"는 식의 "역사"에서 부터
"벤 크렌쇼의 윌슨 8802퍼터는 30여년간 써 오는 것인데 과연 그가
그립을 몇번 갈았을까"하는 식의 대화이다.

보통의 정보는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새로운
골프정보를 한발 앞서 흡수하려 열심이다.

그들은 외국골프잡지는 물론, 각종의 골프서적을 해외출장때마다
한보따리씩 안고 들어온다.

골프를 벗어난 그들의 생활이 어떠한가는 여기서 궁금해 할 필요가
없다.

오로지 골프적 측면에서 "입신"이라는 단어 선택과 "복플레이"의
개념만해도 "골프광의 상식"을 넘어서고 있는 느낌이다.

< 김흥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