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우리 나라에서는 기업의 준조세성 성금.기부금 제도가
일종의 필요악으로까지 치부되어오고 있다.

새정부들어 집권당은 물론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준조세 근절을
다짐했건만 기업의 준조세가 사라졌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

대한상의나 기협같은 경제단체들의 통계를 봐도 기업의 준조세 부담
규모는 오히려 매년 늘어나고 있는 형편이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 민간기업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정부의 정책목표를 비웃기라도 하듯 기업의 조세부담률 증가와 함께
준조세 부담금도 해마다 30~40% 가까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각종
통계는 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특히 대형 사건사고가 빈발한데다 6월의 지방선거까지
겹쳐 기업들의 비자발적 준조세부담도 크게 늘어나지 않을까 우려된다.

기업들의 준조세지출 부담이 커지게 되면 그만큼 기업의 생산코스트가
높아져 기업경쟁력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기업들이 부담하는 준조세성 성금이나 기부금은 직접적으로는 기업의
경영활동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비경제적 지출일 뿐이다.

따라서 준조세가 늘어나면 기업의 자금사정을 압박하게 돼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리게 되고 기업은 결국 그 부담을 소비자들에게 전가하기
쉽다.

냉전체제 종식이후 세계는 경제위주의 무한 경쟁시대로 접어들었다.

오늘날의 국제 경제환경에서는 경쟁력이 있는 국가와 기업만이 살아
남을수 있다.

이점에서 세계각국,특히 선진국들은 자국기업의 경쟁력확보에 혈안이
돼 있다.

국내 기업들도 어느 때보다 기술개발투자,시설투자를 늘려 경쟁력을
높이고 생산력을 확대하겠다는 의욕에 넘쳐 있다.

이런 때에 기업의 준조세부담이 늘어난다는 것은 부담액만큼 기업의
기술개발및 시설투자분을 빼앗는게 되고 이는 곧바로 경쟁력약화로
이어진다.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이려는 기업의 의지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기업들이 내는 성금이나 기부금중에는 기업이익의 사회환원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일본에서도 지난번 판신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기업들이 성금을
냈다.

천재지변을 극복하기 위한 전국민의 모금운동에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한 것이다.

기부금이나 성금은 국민의 자발적인 사회운동 차원에서 이뤄지는게
효과적이다.

이 때에도 성금의 규모는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는게 바람직하다.

이번 대구 가스폭발사고와 관련해서도 많은 기업들이 줄줄이 성금을
내고 있다는 미담을 듣는다.

하지만 기업성금이 성금액수의 공개 등으로 눈치보기식의 부담스런
것이 돼서는 곤란하다.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성금을 내는 경우가 있다면 이는 성금의 정신에도
어긋날 뿐 더러 성금을 받는 측도 떳떳지 못한 일이다.

곧 실시될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대기업은 물론 지방 중소기업들까지
음으로,양으로 반강제적인 성금요구에 시달리지나 않을까 적이 걱정스럽다.

어떤 명목으로든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일만은 없어야겠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