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옥은 자라나면서 돌잔치상에서 여자들이 쓰는 물건들을 집은
그대로 과연 여자들을 좋아하고 따랐다.

남자아이들이 제기차기 같은 놀이를 하며 보옥에게 함께 놀자고 하면
이맛살을 찌푸리며 싫어하다가도, 여자이들이 같이 놓자고 하면 흐믓한
표정으로 달려가곤 하였다.

하루는 남자 아이들이 엽전 던지기 놀이를 하고 있는데, 보옥이
엽전들을 발로 차며 훼방을 놓았다.

화가 난 아니들이 보옥에게 대들었다.

"계집아이들하고만 노는 자식이 어디서 행패야"

"계집아이들이 어때서? 난 너희 같은 남자애들보다 계집아이들이 훨씬
더 좋더라. 너희들은 보기만 해도 역정이 나.

내 앞에서 놀지 말고 저쪽으로 가서 놀란 말이야. 아유, 너희들 냄새는
왜 그렇게 지독하지? 휴우, 더러워"

보옥은 손으로 코를 싸쥐며 고개를 돌렸다.

"이상한 자식이댜. 계집아이가 더 좋다니. 집집마다 아들을 낳으려고
천지신명께 빌고 야단인데. 야, 그리고 너도 고추 달린 남자 아니니?"

아이들도 지지 않고 보옥에게 따져물었다.

"사람들이 몰라서 그러는 거야. 여자는 물로된 몸이요. 남자는
진흙으로 된 몸이야(여자수작 골육, 남자니작골육).

물이 얼마나 맑고 깨끗해? 진흙은 지저분하기만 하지. 그래 나도
더러운 진흙으로 만들어진 남자야. 그래서 깨끗해지려고 물로 된
계집아이들하고 노는 거야. 여자들하고 있으면 마치 목욕을 한 것처럼
몸과 마음이 그렇게 상쾌할수 없어.

그런데 너희들 같은 남자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내가 어둑 더러워지는
기분이야. 내 말 알겠어?"

"여자는 물로된 몸이고 남자는 진흙으로 된 몸이라? 점점 더 이상한
소리만 하네. 얘들아, 이 자식은 계집아이들하고 실컷 놀라고 그리고
우리는 저기로 가서 놀자. 에이, 재수없어"

아이들이 보옥을 향해 눈을 흘기며 엽전들을 챙겨서 저쪽으로 가버렸다.

보옥이 쓸쓸한 모습으로 혼저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계집아이들이
한무더기 몰려나와 귤씨 알아맞추기 놀이를 하였다.

귤씨 알아맞추기 놀이는 귤 안에 씨가 몇개 들었나 먼저 말한 후에
귤을 까서 그 수를 헤아려 가장 비슷하게 맞춘 아이가 이기는 놀이였다.

"보옥아, 우리랑 놀자. 씨가 몇개 들어었게?"

계집아이 하나가 귤을 손에다 올려놓고 보옥과 아이들을 둘러보며
말끝을 길고 늘여서 물었다.

"열개"

"열두개"

계집아이들이 각각 숫자들을 들먹거렸다.

보옥도 열 다섯개라고 외치며 손뼉까지 치면서 좋아 어쩔줄 몰라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