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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류 부품 소재등 자본재산업의 육성에 민과 관이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10일 청와대에서 대통령주재로 "자본재육성 신경제추진회의"가 열린 것은
그 신호탄이다.

이에앞서 삼성그룹이 올초 이건희회장 특별지시로 자본재분야 대일역조
개선을 위한 5개년계획을 마련하는 등 기업계에서도 최근의 엔고로
원가부담이 높아진 일본등으로부터의 수입자본재를 국산화개발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을 적극화하고 있다.

이같은 민관의 움직임을 계기로 국내 자본재산업의 현황과 향후 발전과제
를 씨리즈로 추적해 본다.

< 편 집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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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기계업체인 N사의 구매담당 L이사(45)는 얼마전 시말서를 써야했다.

그가 작년2월 국내 모 공작기계업체로 부터 구입했던 NC(수치제어)
방전기공기가 잦은 고장을 일으킨 때문이었다.

L이사는 사장으로부터 "그러길래 내가 뭐라 그랬나,웬만하면 미쓰비시제품
을 사라고 하지 않았는가"고 하는 핀잔까지 들어야 했다.

NC방전기계는 지난 90년께부터 일찌감치 국산화가 이뤄진 범용 공작기계다.

작년 한햇동안만도 60여대가 국내 생산돼 기계업체들에 공급되기도 했다.

제품 품질에서도 일제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는다는게 이 분야 전문가들의
얘기다.

L이사의 경우는 "운이 나빴던" 극히 일부의 경우였을 뿐이다.

사실 N사가 종래 구입해온 일본산 공작기계들의 경우도 가동중에 가끔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일제기계가 고장을 일으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고,국산기계에
문제가 생기면 "그것 봐라"는 눈총을 받아야 한다.

"국산 공작기계의 품질이 나쁘다는 건 벌써 옛날 이야기입니다.

몇년전만해도 그랬죠.그러나 이젠 상황이 달라졌어요.

국산기계가 지난해 1억8천5백만달러어치나 해외에 수출됐어요.

이건"메이드 인 코리아"가 그만큼 외국업체들로부터조차 인정을 받고
있다는 반증아닙니까"

공작기계협회 김일규이사는 "그런데도 안방시장에서 푸대접을 받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실제로 국내 공작기계 소요물량의 절반가량은 여전히 일본등 외국으로
부터 수입된다.

초정밀가공기계류나 기아연삭기같은 특수가공기계는 어쩔 수 없다고 치자.

그러나 NC선반 머시닝센터등 얼마든지 국내에서 "경쟁력있게" 생산되는
제품에 대해서까지도 수입품이 밀려오고 있다.

L이사가 몸담고 있는 N사와 같은 기업이 한둘이 아니다.

국내 업계의 이같은 외제선호벽은 산업연구원(KIET)이 최근 분석한
조사자료에도 그대로 나타나 있다.

이 기관이 국내 80개 제조업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산자본재가
수입품에 밀리는 이유는"수요자들의 외제선호"(응답자의 50%)때문이라는 것"

품질이 뒤진다"든가 "값이 비싸다"는 응답은 상대적으로 낮다.

26.7%와 23.3%에 지나지 않는다.

상황의 심각성은 이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미래의 기능공을 양성해내는 교육.직업훈련기관들까지도 외산 첨단기계류
선호벽에 빠져있다.

통상산업부가 10일 내놓은 "자본재산업 육성대책"자료에 따르면 공과대학
전문대학 실업고교등 교육기관들이 갖고 있는 공작기계의 4대중 1대는
외제다.

이건우 통산부 기초공업국장은 외제 기계를 사용하는데 익숙해진 학생들이
취업후에 국산보다 외산기계를 쓰게 만드는 빌미를 줄까 걱정된다"고 말한다.

문제는 이같은 국산제품 기피현상이 공공기관에까지 뿌리깊이 만연돼
있다는 점이다.

정부 각 부처와 한국은행등 금융기관,정부출연 연구소등에서 주로
사용하고있는 범용 컴퓨터의 경우 국내에 설치된 1만4천5백88대(92년말기준)
가운데 수입기종이 1만3백78대로 71.1%나 차지하고 있다는 통계가 이를 잘
보여준다.

특히 이미 국산 개발이 끝난 소형및 초소형 범용 컴퓨터의 경우 외국산
제품이 전체 시장의 85%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국내 각계의 외국산 자본재 선호현상을 더욱 부채질 해온게 정부의
잘못된 금융 여신정책이었다.

단적으로 국내기업들이 외산기계를 구입할 때 지원하는 외화대출자금은
연 7~8%의 싼 금리가 책정돼 있는 반면 일반 국산기계에 적용되는
구입자금금리는 연 12~13%에 달한다.

정부가 이날 내놓은 대책은 이같은 모순을 "뒤늦게" 깨달았다는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박재윤 통산부장관이 이날 회의에서 이런 저런 대책을 발표하면서 "오는
2005년까지는 자본재산업을 수출전략산업의 위치에 까지 올려놓을 것"이라고
장담한것도 정부가 이같은 모순을 제거했다는 설명으로 받아들일수 있다.

그러나 국산자본재를 애정을 갖고 바라보는 민관학 모두의 "마인드 혁명"
이 전제되지 않는 각종 대책은 또 한차례의 구두선에 그치지 않을까
걱정된다.

< 이학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