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globalization)와 지방화(localization)가 동시에 진행되는 이른바
세방화(glocalization)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세방화가 얼핏 보기에는 서로 상충되는듯한 두단어의 합성어인만큼 이해
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그러나 세계화와 지방화가 모두 국내와 국외,지방과 서울의 구분을 초월한
보편적 가치의 사회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고 할수
있다.

"가장 지방적인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간단한 말속에 이러한
세방화의 의미가 명확하게 함축되어 있지 않은가 싶다.

한편으로 세방화를 경제적으로 해석하자면 전세계의 기업들이 국내 어디
에서나 동일한 경제규범의 적용을 받으면서 공정한 조건하에서 기업경영을
할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요약할수 있을 것이다.

21세기를 눈앞에 둔 현시점에서 세방화는 이제 우리나라 국정운영의 기본
방향이 되고 있다.

왜냐하면 세계경제가 급속히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는 경제의 범세계화및
지방화 추세하에서는 국토의 총체적인 효율성을 높여 세계경제의 틀속에서
차지하는 우리경제의 위상을 확고히 하는 것이야말로 국가경쟁력을 결정하는
중요원천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방화의 바람을 슬기롭게 극복하여 발전을 위한 순풍으로 승화
시키면 우리경제의 경쟁력강화와 선진경제로의 연착륙을 위한 기틀을
마련할수 있게 되는 반면 변화의 조류에 능동적으로 동참하지 못하면 적자
생존의 원리에 의해 비참하게 도태될수 있는 상황이 바야흐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세방화의 흐름을 잘 활용하여 발전의 전기로 삼기 위해서는 정부의
경제운용기조도 바뀌어야 하고 민간기업의 새로운 대응전략도 마련되어야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금융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게 된다.

우선 국내 산업구조를 경쟁력있는 모습으로 심화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금융지원 행태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종래의 물적 담보위주의 지원에서 무형자산가치에 기초한
지원방식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된다.

정보화및 소프트화가 진전되고 기술개발이 가속되어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이
단축되면 기업의 기술개발력 경영노하우등 무형자산가치의 비중은 급격히
높아지는 반면 물적 담보가치는 가속적으로 감소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금지원방식의 전환은 양질의 고객확보를 통한 금융기관 자신의
이윤극대화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또한 산업구조 고도화는 국내기업의 해외투자를 활성화하고 외국의 선진
기술 보유기업을 적극 유치할때 더욱 촉진되므로 이러한 기업경영의 세계화
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금융지원의 대상과 지원범위를 크게 확대하여야 한다.

따라서 국내기업의 해외진출, 외국기업의 국내진출을 유도하여 국제간
산업의 효율적 수평분업을 촉진하는 금융시스템의 확립이 요구된다.

자금지원외에도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국내외 경제및 산업에 대한 정보
제공, 각종 리스크관리 서비스를 지원하는등 산업금융의 종합서비스화가
더욱 필요하게 된다.

지역경제의 활성화도 금융부문에 부과된 커다란 과제이다.

지역경제 활성화는 각지방에 기반을 둔 기업들의 금융기관에 대한 접근성
(accessibility)을 높여 주지 않고서는 기대할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융기관전체 예수금및 대출의 60%이상이 서울 경기 인천등 수도권
에 집중되어 있는 만큼 자금의 지방환류를 촉진할수 있는 여건의 조성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이를위해 금융기관은 대출심사능력을 강화하여 지방의 우량 중소.중견기업
발굴에 주력해야 한다.

대기업의 은행이탈(disintermediation)이 증가하고 각종 아이디어산업비중
이 증가하는 추세에 있으므로 지역에 경영기반을 둔 유망중소기업에 대한
지역밀착형 금융지원으로 지방의 중소기업이 활성화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특히 경영기반이 취약한 지역특화산업, 지방의 유망중소기업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해외네트워크및 국제업무관련 노하우를 활용하여 투자정보의
제공에서 자금공급, 재무관리및 경영지도에 이르기까지를 포괄하는 종합
금융서비스체제의 구축이 절실하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원조성을 지원하는 노력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열악한 재정기반(94년 기준 재정자립도 평균 56.7%)으로는
지자제 본연의 취지를 살릴수 없으므로 지방자치단체의 투자재원 조달수요
증가에 대응하여 금융기관들이 지방자치단체의 자금조달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금융기관이 지방채 발행을 주선하고 주된 소화처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여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지방채시장의 활성화가 제도적으로 확립되어야 한다.

나아가 지방자치단체의 해외차입및 해외증권발행을 적극 주선하여 자금
조달의 선택폭을 넓혀 주어야 한다.

세방화시대에 있어서는 시장의 가격기구에 의한 금융자원배분을 보완하는
정책적 산업금융의 행태도 변화되어야 한다.

WTO체제의 출범과 함께 특정산업이나 특정목적에 대한 보조금성격의
직접적 금융지원은 제한을 받게 되므로 기술및 인력개발, 환경개선,
인프라개발, 지역개발, 지원등 특정성의 논란이 없는 분야로 중점지원대상을
바꿔야 한다.

이들분야는 경쟁력 제고에 필수적 요소이지만 투자의 회임기간이 길어
위험이 크고 대규모 투자가 요구되는 만큼 고질적인 금융소외부문이기도
하다.

이들분야로의 자금흐름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프로젝트 파이낸싱기법과 각종 위험분산형 신금융기법의 개발을 통해 금융
수혜의 폭을 넓혀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인프라투자수요의 증대에 부응하여 사회간접자본투자에 대한
금융지원방식을 다원화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추진하는 공공프로젝트투자에 대한 지원은 물론
민.관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제3섹터방식", 정책적 장기설비 금융기관의
출자기능을 활용하여 민.관.금융기관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제4섹터방식"
프로젝트투자 등을 지원하는 신금융기법을 적극 개발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세방화도 결국은 그 추진주체인 사람들이 인식의 대전환을
통해 세계와 지방을 동시에 지향하여 생각하고 행동할때(think Glocally,
act glocally) 시작되는 것이며 세방화시대를 선도하는 금융의 역할은 국내
금융기관들이 세계적 수준으로 경쟁력을 갖출때 비로소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