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당이 16일 발표한 "세제.세정분야 공약"은 집권당이 선거철에
내놓은 세금공약 치고는 내용이 비교적 온건하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대부분이 이미 발표됐거나 방향이 확정된 방안들이라는 점에서다.

통상 행정부 측의 반대에도 아랑곳 않고 정치논리 만을 앞세워 과감하게
세금을 감면토록 했던 과거와는 양상이 달라진 느낌이다.

이번 공약에서 부가가치세 면세점(소액부징수 대상)을 현행 연간매출액
1천2백만원이하 사업자에서 내년부터는 2천만원이하로 확대키로
했으나 이는 이미 과거 재무부가 세제개편안에서 제시했던 방향대로다.

이번에 대상자의 범위만을 확정했을 뿐이다.

지방중소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면과 물류산업에 대한 세금경감도
기존 내용대로이다.

종합토지세율을 지금의 절반수준으로 낮춘다는 획기적인 내용이
들어있기는 하나 당측은 여기에도 "예를들어"라는 단서를 달았다.

종합토지세의 세율을 낮추면서 과표현실화율은 높인다는게 기본적인
방향이었기도 하다.

다시말해 행정부의 논리가 상당부분 반영됐다는 얘기다.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세제당국의 반발이 커 진통을 겪었다는 점을
확인할수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근로소득세 부분이다.

민자당측은 그동안 내년에 시행할 예정이던 근로소득세 경감조치를
올해로 앞당겨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해왔을뿐 아니라 재정경제원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까지 얻어냈었다.

하지만 정작 이날 발표문에선 "앞으로 근로소득세의 징수추이를
감안해 추가경감토록 한다"고만 했다.

경기가 과열상태를 우려할 만큼 확장일로를 치닫고 있어 추가적인
세금경감은 곤란하며 "선거"에도 별도움이 안된것 같다는 재경원의
주장으로 합의를 보지 못했던 탓이다.

재경원측은 지난주까지만 해도 근소세 일부를 앞당겨 감면하는데
큰 무리가 없다며 민자당 측의 주장을 수용할 뜻을 밝혔었다.

올들어 세수가 호조를 보여 어느정도는 세금을 예산보다 덜걷을
여력이 있다는 입장이었다.

이를위해 현행 6백90만원인 근로소득공제한도를 8백만원 선으로
올리거나 현재 50만원한도로 돼있는 세액공제한도(근로소득세액의
20%)를 높이는 방안등을 중심으로 실무적인 검토작업까지 벌였었다.

다만 소급시기를 올연간 전체로 하는 것보다는 임시국회에서 세법개정안을
통과시킨뒤 7월부터 적용하는게 바람직하다는 정도의 기술적인 이견만을
보였었다.

한데 재경원이 느닷없이 방향을 틀었다.

15일 열린 당정회의에서 강하게 반론을 폈고 청와대회의를 거치면서도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한 관계자는 재경원이 근로소득세 경감조치가 여론조성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감표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고
전했다.

세금을 깎아줘 봐야 그 혜택은 극히 일부계층으로 한정될게 뻔한데
"정부가 선거를 앞두고 정치논리에 끌려다니며 오락가락 한다"는
비난을 들을 경우 득보다는 실이 크다는 주장이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경기확장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온갓 묘안을 다 짜내고
있는 판국에 한쪽에선 세금을 깎아준다고 할 경우 언론의 집중포화를
자처하는 꼴이된다는 주장이었다.

재경원 고위층에선 한때 조기경감방안을 고려했으나 언론에이같은
사실이 보도된후 일부 실무진 사이에서 "재고"를 건의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자당도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당정이견을 노출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추후 재론키로하는 선으로 물러섰다는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근로소득세가 예상보다 많이 걷힐땐 근소세 조기감면을 시행할수
있는 근거만이라도 두자고 요구,원론적인 방향만 밝히는 선으로
타협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근소세 조기감면 방안이 완전히 물건너 간것은 아니다.

근소세를 포함한 세금징수가 상당히 호조를 보이고 있어서이다.

올1.4분기중 근소세를 포함한 원천징수분 소득세는 작년동기보다
4천7백83억원(29.8%) 늘어난 2조8백17억원이 걷혔다.

전체 국세는 2조6천5백5억원(23.9%) 더 걷혔는데 근소세 세수증가율이
전체국세징수 증가율을 앞지르고 있기도 하다.

경기과열을 이유로 임시봉합한 근소세경감론이 지자체선거 향배에
따라 언제든지 재론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 홍찬선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