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준 한국경제연 연구위원>

최근 대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일부 노조의 단체교섭 과정에서 근로시간
단축 요구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실제 근로시간이 지나치게 길 경우 근로자의 건강과 여가를 통한
재충전의 기회가 줄어들어 오히려 노동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근로시간 단축은 생활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일견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제조업 근로자의 경우 실제 일하는 시간은 1986년을 정점으로
빠르게 줄어드는 추세이며 앞으로도 계속 줄어들 전망이다.

그러나 심히 우려되는 점은 선진국의 경우에는 근로시간이 매우
오랜기간에 걸쳐 서서히 줄어들었으며,특히 유럽의 경우 장기적
경기침체에 따른 실업대책의 일환으로 일자리를 늘리는 차원( work
sharing )에서 근로시간을 줄인 반면,우리의 경우는 86년 이래 단시간내에
급속히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급작스런 근로시간 단축에 기업은 미처 대응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으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근로기준법으로 인하여
기업은 일손부족과 더불어 인건비 인상부담이라는 이중고를 겪게
되었다.

근로시간 단축이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예컨대
D기업은 현재 법정근로시간인 주44시간 일을 하고 임금을 44만원
받는다고 가정해 보자.그런데 단체교섭 과정에서 노조가 현 임금수준은
그대로 둔채 근로시간을 주42시간으로 줄여 줄 것을 요구해 D기업이
이것을 받아들였다고 하자.이 경우 실제 일하는 시간의 감소로 생산량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물론이고 시간당 임금비용은 1만480원으로 4.8%
인상되는 효과를 가져와 기업은 이중부담을 안게 된다.

더욱이 1주간 업무량이 폭주해 주48시간을 근무하게 될 경우를 생각해
보자.이럴 경우 시간당 임금단가의 상승(4.8%)과 더불어 기준 근로시간외
초과근무에 따른 추가적으로 지급되는 임금(할증임금 1.5배)을 감안할때
근로자가 받게 되는 임금은 약 53만4,000원으로 이는 종전의 주
44시간 근무할 때(50만원)에 비해 약 6% 이상의 임금비용이 증가한
것이다.

더욱이 시간외근무의 경우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제한없이 당사자간의
자율에 맡기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주12시간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어 이 기준이상으로는 절대 연장근로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기업은 업무의 폭주로 말미암아 휴일근무마저 시키게 될
경우 쉬어도 받게되는 휴일유급임금(100%)와 실제 일한 대가(100%)및
선진국보다도 월등히 높은 수준의 할증임금(50%)등 근로자는 무려
250%의 임금을 받게되어 기업에는 과도한 부담이 되고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이 경직된 근로시간요건과 이에 편승한 노조의 요구는 노사관계의
악화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어 최근 엔고현상으로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상실할 우려마저 든다.

따라서 세계화를 지향하고 OECD가입을 눈앞에 둔 우리 경제는 기업의
경쟁력강화를 위해 근무시간의 유연성을 높일 필요성이 있다.

근로시간의 유연성을 제고하는 대안중의 하나는 "변형근로시간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변형근로시간제란 생산량의 변동에 맞추어 근무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제도를 말한다.

그러면 이 제도의 이점은 무엇인가.

앞의 D기업의 예를 들어 설명하기로 한다.

D기업이 1주간의 업무폭주로 주48시간및 휴일근무로 총56시간을
근무했다면 이 기업은 할증임금및 휴일근무등으로 기업의 입장에서는
인건비상승이 큰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2주간 변형근로시간제를 도입한다면 업무가 폭주하는
첫 주일은 56시간 근무하는 대신 다음 주에는 32시간 근무할수 있으므로
주평균 44시간 근무하는 것이 되어 기업은 인건비추가부담이 없게
되고 근로자는 2일간의 휴일이 늘어나게 된다.

이와 같은 이점때문에 변형근로시간제는 오래전부터 세계 여러나라에서
실시중이며 갈수록 확산되는 추세이고 일본에서도 87년에 법개정을
통하여 이를 본격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 제도를 87년에 오히려 폐지함으로써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제 근로시간의 유연성이 없는 단순한 근로시간의 단축은 사실상
임금의 추가인상을 의미하므로 기업의 경쟁력제고차원에서 반드시
억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업의 경쟁력제고및 근로생활의 질을 높이는 조화의 방안으로서
변형근로시간제의 조속한 시행을 고려하여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