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구 전노동부장관이 26일 구속수감됨으로써 이번 사건은 수사공개
4일만에 고위공직자의 단순뇌물사건으로 마무리됐다.

이번 검찰수사는 건국이후 처음으로 현직장관을 구속했다는 점에서
검찰의 성역없는 수사의 개가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또 처음으로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대출커미션구조와 기업체들의
대출건당 뇌물액, 가명계좌를 통한 고위공직자의 비자금운영수법등을
밝혀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이같은 긍정적인 평가와는 달리 의혹 또한 꼬리를 물고 있다.

이전장관이 산업은행총재 재임기간이 4년이나 되고 연간대출액이 7조~
8조원에 이르고 있는 점, 대출업체가 3백여개에 달하는 점등에 걸맞지 않게
밝혀진 뇌물액수가 2억7천4백만원에 불과하다는 점은 석연치 않다.

여기에다 산업은행총재라는 자리가 시설자금대출을 둘러싼 정경유착의
핵심자리인데도 검찰이 이전장관에 대한 수사로 국한했다는 점도 의혹을
사는 대목이다.

수사공개이후 이전산은총재에 대한 수사는 정치권으로 비화될 여지가
많다는분석이 유력하게 나돌았다.

산은총재라는 자리가 집권자의 측근중에 측근이 가는 자리라는 점에서
수사확대설은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졌었다.

수사의 생리상 이같은 고위공직자에 대한 뇌물수사는 대부분 관련정치인이
거론되게 마련이다.

검찰은 그러나 정치인 관련설에 대해서는 펄쩍 뛰며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검찰일부에서는 이와관련, 현단계에서는 이전장관에 대한 수사만 마무리
하고 추후에 이전장관수사과정에서 얻어낸 다른 거물급인사에 대한 조사에
들어가지 않겠느냐는 분석도 흘러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수사의 착수배경에 대해서는 아직도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고 있다.

왜 수사하게 됐는지 왜 하필이면 한국통신의 노사분규등 노동현장이
시끄러운 때에 노동부장관이 수사대상에 올랐느냐는등에 대한 의문이다.

이에대해 검찰관계자는 지난 4월에 끝난 덕산그룹에 대한 수사가 계기가
됐다고설명하고 있다.

덕산그룹 박성섭회장의 형이 운영하는 홍성산업의 시설자금 대출현황에서
단서를 잡았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이전장관을 목표로 수사가 착수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검찰은 이 단서를 추적해들어가던중 다른 대기업이 시설자금과 관련해
가명계좌를 통해 이전장관에 대출때마다 1천만원에서 5천만원씩의 뇌물을
건넨 것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워낙 대출비리가 심해 이전장관을 처벌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전장관에 대한 수사도 덕산수사의 결과인 만큼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덕산리스트"는 사실일 가능성이 많다.

이번 수사는 또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에 대한 전반적인 대출비리에 대해서
수사를 벌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국책은행이 지금까지 한번도 사정대상에 오르지 않아 비리의 온상이
돼왔는데도 현직임직원에 대해 아무런 수사를 펴지 않았다.

결국 이번 수사는 이전장관의 뇌물액 2억7천여만원만이라는 일각만
밝혀냈을뿐 아무 것도 속시원하게 밝힌 게 없다는 지적이 많다.

이밖에 뇌물을 받은 사람은 엄단됐음에도 뇌물을 준 기업체에 대해서는
뇌물수사의 관례를 들어 사법처리수위를 불구속입건쪽으로 낮춘것은 만연한
대출비리를 척결하는 데는 미흡했다고 할 수 있다.

< 고기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