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연은 금릉 지방 유지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부모를 여의고 형제도 없이
외롭게 살아왔다.

부모가 남겨놓은 재산은 조금 있어서 큰 어려움 없이 그럭저럭 지내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풍연은 열 아홉 살이 될 때까지 여자들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가 경건하고 절도 있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남색을
즐기는 괴벽스런 습성 때문에 그러한 것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그의 남색벽을 고쳐보려고 이모저모로 노력을 하였으나
그는 막무가내였다.

풍연은 한나라 고조와 혜제,문제,무제,애제같은 황제들도 총동이라고
하는 미소년들을 상대로 남색을 즐겼던 일을 기억하며 자기 습성을
고치려고 하지 않았다.

풍연이 황제들의 남색 행각을 두루 살표본 결과 무제와 애제의 경우가
가장 감동적이었다.

무제에게는 두 명의 청년이 총동으로 있었다.

무제는 그 중 한 명과 비역질을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그 둘을
한꺼번에 상대하여 비역질을 하기도 하였다.

무제는 황후와 궁녀들과 교합을 할 때도 옥문으로 들어가기보다는
후정화(뒤뜰에 핀 꽃이란 뜻으로 항문을 일컫는 말)로 들어가기를
즐겼는데,하물며 총동들을 상대로 할 때는 두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두 총동 중 한 명은 황제에게 일편단심으로 몸과 마음을
바치지 않고 궁녀들과 몰래 어울렸다.

이 사실은 안 다른 총동이 그 총동을 쳐 죽여버렸다.

무제는 격노하여 동료를 살해한 총동을 잡아다가 처형을 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그 총동은 자초지종을 밝히며 눈물을 흘렸다.

"하늘 같은 님의 지극한 사랑을 배신하고 다른 여자들과 어울리는
그를 차마 살려둘 수 없었습니다" 그 총동의 눈물을 본 무제 역시
눈물을 흘리며 그를 이전보다 더욱 사랑하였다.

총동이 많기로 이름이 난 황제는 바로 전한의 마지막 황제인 애제였다.

그 수많은 총동들 중에서도 가장 총애를 받았던 자는 동현이라는
청년이었다.

하루는 동현이 후정화를 애제에게 대어주고 피곤한 나머지 애제의
옷소매를 베개삼아 잠이 들었다.

그때 어느 신하가 접견을 아뢰었다.

애제는 일어나려고 하였으나 옷소매를 베고 곤히 자는 동현 때문에
잘 일어날수가 없었다.

그러나 애제는 동현을 깨우거나 하지 않고 그가 잠을 계속 더 자도록
칼로 옷소매를 베고는 조용히 일어나 신하를 접견하였다.

그래서 그 이후로 소매를 자른다는 의미인 "단수"라는 말은 남자들간의
동성애를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