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적자가 줄어들면 그 나라의 통화가치가 올라간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설이다.

지난 2주일간 달러가치가 회복되고 있는 것도 미재정적자가 줄어들
것이라는 강한 기대감에서다.

그렇다면 "미재정적자축소=달러회복"이라는 통설은 과연 맞는가.

과거 역사는 이 통설이 현실과 부합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지난 80년대의 역사적 경험은 재정적자축소가 오히려 달러하락요인으로
작용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지난 80년 미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2.1%였다.

그리고 5년뒤인 85년에는 GDP의 4.8%로 크게 늘었다.

그런데 이기간중 무역가중치기준으로 달러가치는 엔과 마르크등 다른
선진국통화들에 대해 56%나 급등했다.

재정적자가 늘었음에도 불구, 달러가치는 도리어 올라간 것이다.

이어 지난 85년과 87년까지의 2년동안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 기간중 미재정적자는 GDP의 4.8%에서 2.9%로 줄었다.

그러나 달러는 이 3년동안 다른 선진국통화들에 대해 32%가량 떨어졌다.

미재정적자축소가 달러회복을 이끈다는 이론이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은 일본과 유럽국가들의 행동에서도 나타난다.

일본과 독일 프랑스 영국은 이 통설과 관련, 자가당착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최근 미국에 대해 재정적자를 줄이도록 촉구하고 있다.

달러가치를 "끌어올리고" 국제외환시장을 안정시키려는 목적에서다.

이들은 그러나 지난 80년대초에는 정반대의 요구를 했었다.

당시 매우 높았던 달러가치를 "낮추기 위해" 미국은 재정적자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10여년전에는 달러하락을 위해 미재정적자축소를 요구하다가 지금은 반대로
달러회복을 위해 재정적자를 줄이라는 모순적인 행동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재정적자감축=달러회복"이라는 통설이 실제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사실은 여러 이유로 설명될수 있다.

우선 재정적자가 줄어들면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한 정부차입액이 감소,
시장금리가 내려가게 된다.

금리가 내려가면 달러가치도 덩달아 하락하는 것은 상식이다.

특히 실질금리(명목금리-인플레율)가 떨어지면 미금융자산에 대한 외국인의
투자가 위축되고 그결과는 달러가치하락으로 연결된다.

또 재정적자감축은 정부지출감소, 혹은 세금인상으로 인한 가계와 기업의
지출감소의 둘중 하나로 나타난다.

어느쪽의 경우든 미국내 총소비와 총생산간의 갭(소비>생산)이 좁혀지게
되고 그에따라 무역적자는 줄어들어야 한다.

무역적자가 줄어들기 위해서는 달러가치가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 두번째
이유다.

세번째 이유는 지난 80년에서 85년사이에 나타난 현상으로 설명된다.

일단 재정적자가 확대되면 통화량급증으로 물가가 올라가고 이로인해
통화(달러)의 명목가치가 떨어진다.

이과정까지는 재정적자확대=달러하락(반대로 재정적자축소=달러상승)의
이론이 성립된다.

하지만 물가가 불안해지면 금리인상이 뒤따르고 금리인상은 달러상승을
초래한다.

지난 80~85년의 경우가 꼭 이랬다.

이 세번째 이유는 앞의 첫번째 이유의 역상황이기도 하다.

재정적자축소가 달러상승으로 나타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재정적자축소
가 경제성장률을 둔화시키게 된다는 점이다.

재정적자를 줄이려면 정부지출을 축소하거나 세금을 올려야 한다.

정부지출을 축소하든,세금을 올리든 그 어느경우도 경제성장률의 둔화를
초래하게 된다.

경제성장률이 둔화되면 통화가치가 올라가기 어렵다.

물론 재정적자축소가 달러회복요인으로 작용하는 측면도 있다.

재정적자가 줄어들면 그나라 경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도가 높아져
통화가치가 올라간다.

또 재정적자축소로 통화량이 줄어들면 통화가치가 높아진다.

그렇지만 이같은 요인으로 재정적자축소가 달러가치를 끌어올린다 해도
이는 단기적인 현상으로 끝날 여지가 많다.

재정적자축소가 초기에는 달러가치를 끌어올리겠지만 이 달러상승은 무역
적자확대를 초래, 결국에는 달러가 다시 떨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 이정훈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