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가인 김병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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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헌법"은 잘 계시느냐"
어느 때인가 경무대에서 이승만대통령에게 이런 질문을 받은 당시 법무
장관이 "무슨 말씀입니까"하고 되묻자 이대통령은 "대법원에 "헌법"이 한
분 계시지 않느냐"고 했다고 한다.
꼬장꼬장하게 헌법을 내세우며 원칙을 고수하고 비판을 서슴치 않았던
초대대법원장 가인 김병로(1887~1964)에 대한 이대통령의 불편했던 심기를
그대로 읽을 수 있게 해주는 일화다.
대법원장으로 재직하는 9년3개월동안 가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행정부나
입법부에 대해서 굽히지 않았다.
이대통령이 여러차례 만나 사법부 운영에 관해 협조를 요청했으나 재판은
판사 각자가 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사법부는 나에게 맡겨달라"는
말로 대통령의 입을 막았다.
그러나 급기야 대통령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1956년 제22회 정기국회에 보낸 치사에서 이대통령은 사법부의 독단이
세계 어느나라보다 심하다는 노골적인 불만을 털어놓고 사법부의 권한을
축소해야겠다는 위협까지 서슴치 않았다.
그리고 어떤 의도에서였는지 중요한 사건은 대법원장이 행정부와 협의해서
판결하고 있으므로 큰 위험은 없다는 묘한 말꼬리를 달았다.
국회에서는 대법원장 인책론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단언하노니 오늘날까지 재판에 있어서나 사법운영에 있어서 나의
소신과 양심에 어그러진 판단을 한 일은 한반도 없고 장래에도 없을 것을
확언한다. 독립된 사법운영에 추호도 양심의 가책을 받은 적이 없다"
가인이 이렇게 단호한 태도를 밝히자 판문은 그대로 가라앉고 말았다.
이대통령의 정치적 협박은 수포로 돌아간 셈이다.
가인은 법관들에게 "돈 없어 일 못하겠으면 그만두고 나가라"고 호통을
치면서도 세상사람이 다 불의에 빠져간다 할지라도 법관만큼은 정의를
최후까지 사수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리고 "법원도 썩었다" "법관조차 믿을수 없다"는 불미스러운 말들이
들려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늘 타일렀다.
가인이 세상을 떠난지 30여년이 지난 요즘 그가 걱정하던 국민의 법조계에
대한 불신은 훨씬 더 증폭돼 "사법개혁" 논의까지 일고 있다.
6월은 가인 "김병로의 달"이다.
"근검절약과 청렴의 표본" "법조인의 사표" "한국 사법의 화신" "한국
사법부의 초석"이라고 가인 추겨 올릴것만 아니라 그의 고결한 사람의
태도와 정신을 실천하는 법조인들이 과거 어느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1일자).
어느 때인가 경무대에서 이승만대통령에게 이런 질문을 받은 당시 법무
장관이 "무슨 말씀입니까"하고 되묻자 이대통령은 "대법원에 "헌법"이 한
분 계시지 않느냐"고 했다고 한다.
꼬장꼬장하게 헌법을 내세우며 원칙을 고수하고 비판을 서슴치 않았던
초대대법원장 가인 김병로(1887~1964)에 대한 이대통령의 불편했던 심기를
그대로 읽을 수 있게 해주는 일화다.
대법원장으로 재직하는 9년3개월동안 가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행정부나
입법부에 대해서 굽히지 않았다.
이대통령이 여러차례 만나 사법부 운영에 관해 협조를 요청했으나 재판은
판사 각자가 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사법부는 나에게 맡겨달라"는
말로 대통령의 입을 막았다.
그러나 급기야 대통령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1956년 제22회 정기국회에 보낸 치사에서 이대통령은 사법부의 독단이
세계 어느나라보다 심하다는 노골적인 불만을 털어놓고 사법부의 권한을
축소해야겠다는 위협까지 서슴치 않았다.
그리고 어떤 의도에서였는지 중요한 사건은 대법원장이 행정부와 협의해서
판결하고 있으므로 큰 위험은 없다는 묘한 말꼬리를 달았다.
국회에서는 대법원장 인책론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단언하노니 오늘날까지 재판에 있어서나 사법운영에 있어서 나의
소신과 양심에 어그러진 판단을 한 일은 한반도 없고 장래에도 없을 것을
확언한다. 독립된 사법운영에 추호도 양심의 가책을 받은 적이 없다"
가인이 이렇게 단호한 태도를 밝히자 판문은 그대로 가라앉고 말았다.
이대통령의 정치적 협박은 수포로 돌아간 셈이다.
가인은 법관들에게 "돈 없어 일 못하겠으면 그만두고 나가라"고 호통을
치면서도 세상사람이 다 불의에 빠져간다 할지라도 법관만큼은 정의를
최후까지 사수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리고 "법원도 썩었다" "법관조차 믿을수 없다"는 불미스러운 말들이
들려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늘 타일렀다.
가인이 세상을 떠난지 30여년이 지난 요즘 그가 걱정하던 국민의 법조계에
대한 불신은 훨씬 더 증폭돼 "사법개혁" 논의까지 일고 있다.
6월은 가인 "김병로의 달"이다.
"근검절약과 청렴의 표본" "법조인의 사표" "한국 사법의 화신" "한국
사법부의 초석"이라고 가인 추겨 올릴것만 아니라 그의 고결한 사람의
태도와 정신을 실천하는 법조인들이 과거 어느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