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과 경찰이 현충일인 6일 오전8시 한국통신노조간부들이 농성중이던
조계사와 명동성당에 경찰력을 투입한 것은 "공권력행사에는 성역이 따로
없다"는 확고한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공권력투입이후 발생할 종교계의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하고 4대지방선거가
코앞에 다가와 있는 시점인데도 불구, 공권력투입이라는 초강수를 둔 점
에서도 이같은 정부의 의지를 읽을수 있다.

더욱이 지방선거에서 국가통신망으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국통신이 분규
장기화에 휘말릴 경우 통신대란등 막대한 피해를 낳을 것이라는 우려도
공권력투입의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그동안 조계사와 명동성당에 공권력을 투입하는 문제를 놓고 고심
에 고심을 거듭해왔다.

공권력투입대상이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된 맡고있는 한국통신의 노조간부들
로 법집행이라는 명분은 충분했다.

그러나 투입지역이 다름아닌 한국불교의 본산중의 하나인 조계사와 가톨릭
성지인 명동성당이라는 점이 정부의 신속대응을 어렵게 만들었다.

여기에다 조계사와 명동성당에 공권력이 투입된 전례가 없다는 점도
정부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지난 91년 5월 유서대필사건으로 명동성당에 숨었던 강기훈씨를 잡기위해
경찰력이 동원됐으나 강씨의 자진출두로 공권력투입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또 지난해 4월 조계종내분 당시, 조계사내 폭력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력투입요청이 있긴 했지만 정부가 단독으로 경찰력을 투입하지는
않았다.

또 사찰과 성당은 긴급하게 피난온 사람을 돌봐주고 용서받게 해주는
곳이라는 전통과 외부세력의 진입을 금기시하는 종교관도 검경의 손발을
묶는데 한몫을 했다.

군사정권시절 부산 미문화원방화사건의 주범이었던 김현장씨를 숨겨준후
구속된 원주성당의 최기식신부의 사례도 바로 이 성당의 "긴급피난권"이
작용한 때문이다.

세속의 실정법과 종교법의 대립이 빚은 사건인 셈이다.

그럼에도 검경이 공권력을 투입한 것은 결국 성당과 사찰도 실정법과 헌법
의 통제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또 종교적 "긴급피난권"도 오늘의 사태에서는 인정할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검경은 한국통신노조간부들의 조계사 명동성당농성이 반민주운동으로
숨어다니던 과거 군사정권시절때의 그것과 엄격히 구별돼야 한다는 시각
이다.

종교기관이 수사당국의 수배를 받고 있는 범죄자들의 도피처가 되고 있는
현실을 더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특히 공권력투입은 검경이 그동안 꾸준히 명분을 쌓아온 결과라는 분석
이다.

사전구속영장을 집행한 검찰은 이미 역대정권하에서는 처음으로 대통령의
처사촌인 손성훈씨를 구속, 성역없는 수사의지를 내비친 바있다.

이어 이형구전노동부장관을 뇌물수수혐의로 구속해 건국이후 처음으로
현직장관을 잡아들이는 엄정한 법집행의지를 거듭 밝혔다.

한편으로 경찰은 농성중인 노조간부들에게 이미 발부된 사전구속영장을
절차에 따라 6차례에 걸쳐 조계사와 명동성당에 제시하는 인내심을 보이기도
했다.

이를통해 검경은 성당과 사찰에 대한 공권력투입도 정부의 성역없는 법
집행의 일환임을 과시한 것이다.

이번 공권력투입은 또 앞으로 유사한 사태가 재발할 경우 정부는 언제든지
자체 판단에 따라 공권력을 투입할 것이라는 점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공권력투입이 이해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합법성과 정당성이
전제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 고기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