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중에 주말을 이용하여 모처럼 로마관광에 나섰다.

가이드는 왜소한 체격의 우아한 중년여성이었는데 그녀의 해박한 지식과
예술에 대한 사랑은 곧 우리를 감동시켰다.

우리는 마치 존경하는 선생님을 따르는 국민학생들처럼 발걸음을 죽이며
얌전하게 그녀의 강의를 들었다.

호텔에서 본 관광안내책자에 외국관광객에게 이런 내용의 주의사항이 적혀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관광안내는 매우 존경받는 직업입니다. 가이드는 역사학자
고고학자 예술가이므로 그에 맞는 인격적 대우를 해주어야 합니다"라고.

굳이 이런 설명이 필요 없을만큼 그녀는 전문적 해설과 선조에 대한 자랑
으로 우리를 압도했던 것이다.

더욱이 그녀는 그날 영어반 독일어반 스페인어반의 세반을 이끌고 다니며
유창하게 3개국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나와 시종함께 다닌 일본 나고야 대학의 독일어 교수는 오스트리아에
교환교수로 와있던 분이었는데 독일어반을 마다하고 잘 통하지 않는 영어반
에 합류하였다.

가끔 내가 일본어로 통역을 하였는데 그때만 해도 홀로 외국에 나온 일본
사람은 꽤나 나약해 보였었다.

1972년경으로 기억한다.

그때 이후로 나의 꿈은 퇴직후 서울이나 경주에서 관광가이드가 되는
것이다.

관광객을 미국반 일본반으로 나누어 데리고 다니면서 우리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와 예술을 마음껏 섬렵하고 우리 선조의 남긴 발자취를 한껏 자랑하고
싶은 것이다.

로마에서 열등의식을 느끼지 않는 민족은 없을 것이다.

생각하지만 일본과 미국은 문화시적으로 단연 우리의 후진국이다.

단 일본관광객중에는 학구파가 더러 끼어 있으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내가 잘아는 신일본제철화학의 가하루 부사장(지금은 은퇴하였지만)을
부여로 처음 안내한 M물산의 김회장은 가하루씨로부터 소상하게 현지 고적에
대한 해설을 듣고 감동과 수치심이 교차하였다고 실토했다.

안내자가 안내를 받는 꼴이 되었는데 가하루씨는 선조가 백제사람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어느덧 은퇴후를 생각할 나이가 되있다.

나를 키워준 조국에 대한 마지막 봉사로 훌륭한 가이드가 되었으면 하는데
로마의 그녀를 생각하면 자신이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