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아버지 노조는 어머니"

서울 방학동소재 미원공장 노사의 한가족의식을 잘 나타내주는 말이다.

우리 입맛에 친숙한 전통의 조미료 "미원"을 비롯해 "감치미" "불고기양념"
"맛나" 등을 생산하는 미원공장은 맛의 조화를 생명으로 여기는 조미료만큼
이나 원만한 노사관계를 유지해오고있다.

지난 87년 노노갈등으로 인한 하룻동안의 분규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단한건의 노사분규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 비결을 묻자 홍택(금+택)연 노조위원장(54)은 "노사라는 구분은 곤란
하다. 우리는 모두 한형제.한가족이라는 의식을 갖고있다"고 대답한다.

이런 배경에는 지난 58년 회사창립이후 동고동락해온 노사의 진한 "동지
의식"이 깔려있다.

또 "미원"이라는 독보적인 상표에 대한 자부심도 배여있다.

발효관실에서 일하는 황진성씨(43)는 "나이나 지위를 떠나 애사심은
한결같다. 비록 소란스런 기계음과 자극적인 원료냄새속에 일하지만 모두
소중한"자기 몫"이라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한다"고 소개한다.

방학동공장에 장기근속근로자가 많다는 사실도 이같은 애사심을 반영해
주고있다.

20년이상 장기근속근로자는 전체근로자 5백40여명가운데 23%가량인 1백20
여명에 달해 국내 최고의 비율을 자랑하고있다.

공장장인 김양수상무(54)는 현장 기술직사원으로 출발해 미원공장에서만
30년째 근무해오고있다.

그는 현장의 정서를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

퇴근시간인 오후 6시이후에는 절대로 현장을 순시하는 법이 없다.

마치 감시하러 돌아다니는 것처럼 비쳐지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근로자의 자율을 존중하고있는 셈이다.

경영진들의 근로자사랑도 남다르다.

지난4월 빙부상을 당한 근로자 김택씨(56.보전팀)는 장례를 마치고
전임직원에 감사의 손수건을 전했다.

장지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인데다 빙부상이었음에도 불구, 공장장
을 비롯 2백여명의 임직원이 문상을 왔기때문이다.

문상객이 많이 몰려와 처가와 인근동네에 "사위칭찬"이 자자했음은 물론
이다.

"노사한몸"이라는 의식이 공장 곳곳에 자리잡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방학동공장 노사는 그어느 사업장보다 고충처리속도가 빠르다는 자부심을
갖고있다.

고충처리의 영역도 주택자금융자에서 제도개선, 불합리한 관행타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근로자들의 고충이나 건의사항이 전해지면 노조는 사안의 타당성을 검토,
즉각 관리부서를 찾는다.

상당수 생산직사원 출신들로 구성된 관리직은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노조도 회사의 방침이나 의사를 성실하게 조합원들에게 전달한다.

노사가 철저한 공존공영의 길을 걷고 있는 느낌이다.

김정철 생산지원부장(48)은 "노사가 서로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기때문에
거리감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의사소통과 상호이해도 빠르다"고 분위기
를 전한다.

미원공장은 평상시 노사협의회와 별도로 "현장의 소리"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공장내 화장실과 사무실내 전기스위치위에는 "24시간 열려있는 현장의
소리"스티커와 함이 붙어있다.

근로자들은 "현장의 소리"를 이용,공장 곳곳에 숨어있는 비효율을 지적
하고 개선을 제안할수있다.

지난10월부터는 PC통신을 이용해 근로자와 최고경영자를 직접 연결하는
전자사서함제도도 운영하고있다.

이같은 제안제도들은 노사간에 비공식적인 의사전달통로를 확보해줌으로써
상호신뢰구축에 큰 힘이 되고있다.

유영학사장(56)은 "근로의욕은 대화와 신뢰를 통해서 형성된다"며 "일류
기업으로 평가받기위해 노력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고객은 물론 종사자와
그가족에게 만족과 행복을 주기위한 것"이라고 자신의 노사관을 밝힌다.

미원 노사관계의 또다른 강점은 이익을 배분하는데 인색하지않다는
것이다.

초중고는 물론 대학생자녀에 대한 학자금이 전액 지원되며 "가족수당"외에
"부모수당"이 별도로 있다.

등산회 축구회 볼링회등 사내 동호인모임에도 분기별로 1백-2백만원가량의
운영비가 지원되고있으며 노조가 주관하는 체육대회등 특별행사에도 예산이
책정돼있다.

지난 84년엔 중간퇴직금을 지급,무주택근로자의 숙원을 풀어주었다.

최근 미원공장 근로자들은 앞서 빙부상을 당한 김씨처럼 "사위구실할
기회"가 생겼다.

올해 타결된 단체협상은 30년이상 장기근속근로자 부모에게만 실시해오던
해외여행경비 지원대상을 장인.장모까지로 넓혀놓았다.

방학동공장은 공장수리 및 시설보수를 위해 다음달 11일부터 20일간의
휴업에 들어간다.

김상무는 "우리회사 노사는 휴업기간중 마련된 야유회나 각종 재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협력마인드를 재충전, 다시 활기찬 사업장을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조일훈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