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드리".

해성텍스타일의 이한림사장(39)을 두고 해외바이어들이 부르는 닉네임이다.

이사장은 자카드에 관한한 대가이고 최대 생산.수출업자이다.

란제리원단부문에서는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미국 할인체인점인 K마트 JC페니및 최대속옷업체인 빅토리안시크러시
내에서 팔리는 내의류의 90%정도는 원단에 "HS"마크가 찍혀있다.

해성제품이란 뜻이다.

이회사는 자카드직물 단일아이템으로 93년 8백만달러를 올렸고 지난해
1천4백만달러를 달성, 1천만달러 수출탑을 받았다.

직물경기가 사상최악인 상황에서 홀로 성장일로를 걷고있는 셈이다.

고부가가치품목을 특화한 때문이다.

이사장은 8년전 맨주먹으로 사업전선에 뛰어들었다.

한국외대 불어과를 나와 2년4개월간 자카드업체인 동구섬유등에서 직물
수출 경험을 쌓았다.

밤에는 이대학 무역대학원을 다니며 이론공부를 했다.

88년 퇴직금 1백50만원으로 창업을 선언했다.

"유학을 가고싶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여유가 없어 유학보다는 조그만
사무실을 하나 내는 것이 더 쉽게 여겨졌어요"

이사장이 밝히는 창업동기다.

여직원 한명을 데리고 사업을 시작했다.

수출경험을 살려 단순오퍼업무만으로 첫해 80만달러의 실적을 올렸다.

실을 염색해 짜는 직물인 자카드가 선진국시장을 파고들면서 수출은 매년
50%이상씩 신장을 거듭했다.

품질및 납기준수의 필요성이 커지자 92년 대구 평리동에 공장을 마련했다.

이공장에 24대의 직기를 돌리고 있고 하청업체를 포함하면 4백대에 이른다.

국내 자카드직기 2천5백대중 16%를 해성의 우산아래 있는 셈이다.

그러나 성장과정에는 걸림돌도 많았다.

직물경기가 호황이었던 90년 하청생산업자들이 마진이 높은 업체로 공급선
을 전환하면서 파산에 직면했다.

해성에 주기로 한 물량을 크게 줄이는 바람에 납기차질및 계약불이행
사태가 빚어졌던 것이다.

지난해에는 바이어와 국내유령회사에 속아 8만달러 5만달러씩을 떼이는
씁쓸함도 맛봤다.

20만달러어치를 싣고 베트남으로 향하던 배가 충돌로 바다에 빠지는
바람에 보상문제로 3개월간 골머리를 썩기도 했다.

"직물산업이 다시 살아나느냐 아니면 죽느냐는 종사자들의 마인드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너죽이면 나산다는 식의 이기주의가 업계에 팽배해 있는 한
전망이 어둡습니다. 편법 탈법이 아닌 정의의 바탕위에서 선의의 경쟁을
해야지요"

이사장의 역설이다.

해성은 올해 수출목표를 지난해보다 10% 늘려잡고 있다.

외형늘리기보다는 엉뚱한 손실을 더이상 입지않겠다는 각오이다.

수출노하우를 바탕으로 하반기중 내수에 참여할 계획이다.

이를위해 최근 해성어패럴을 설립, 자카드를 소재로한 아동의류를 판매할
채비를 갖추고있다.

이사장의 소망은 집한채 갖는 것이다.

경영상황을 완전공개, 영업이익을 40여 종업원들에게 우선 배분하다보니
자신은 아직 전세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려웠던 90년 한해동안에는 월급을 한번도 집에 가져가지 못했다.

사장신분이면서도 생계를 공무원인 부인에 의존할 정도라고 이회사 관계자
는 귀띔한다.

이사장은 "어떤 역경이 와도 영원한 자카드리로 남아 이분야에선 세계
최고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문병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