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수 WTO(세계무역기구)사무차장이 제네바본부에서 3년간의 임기를 수행
하기 위해 20일 낮 대한항공편으로 출국한다.

WTO는 지난 86년 UR협상의 신호탄이 된 우루과이의 푼타 델 에스테 각료
회의에서 잉태된 뒤,9년여의 산고끝에 GATT(관세무역일반협정)를 대신해
강력한 "경제 UN"으로 갓 출범한 국제 통상경찰조직.

김차장은 86년 첫 UR협상때 상공부 제1차관보로 참여했다.

작년 4월 열린 마라케시 최종 각료회의에선 상공자원부 장관으로 한국을
대표해 UR협정문에 조인했다.

그러니까 9년여동안 줄곧 협상테이블을 지켜온 WTO 산파중의 한사람이
김차장이다.

그가 이제 "한국 관료 또는 각료 김철수"가 아닌 "세계시민 찰스 김(영어
애칭)"으로서 세계 통상질서에 어떤 "치세"를 열어 보일 것인지가 관심이다.

유화선 한국경제신문 산업1부장이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는 김차장을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빌딩 45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국제통상대사실)에서
만나봤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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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유화선 < 산업1부장 > ]]]

-국제통상대사로서의 직함은 오늘(6월19일)로 마감하시는 셈이겠네요.
이 방에 찾아온 손님도 혹시 제가 마지막 아니겠습니까.

앞으로 만나뵙기도 힘들겠고요.

<>김차장=그렇게 됐네요. 이젠 제네바에서 만나뵈어야 겠군요.

-WTO사무차장이란 어떤 역할을 하는 자리입니까.

<>김차장=각국간의 통상분야에 관한 이해관계를 조정해 세계무역의 전면적
인 자유화를 조장해 나가는 일을 하는 자리지요.

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관장하게 될 것인지는 부임후 논의해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무차장이 4명이나 되거든요. 다만 짐작컨대 사무총장 경선에도 참여했고
장관도 지냈고 하니까 WTO가 관장하는 통상관련 전반적인 업무를 다루게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정치성을 띤 분야 같은 것 말입니다.

-임기는 얼마나 됩니까.

<>김차장=3년에 중임이 가능합니다.

-결국 사무차장으로 낙착되긴 했지만 당초에는 사무총장을 노리고 경선에
출마하지 않았습니까.

경선 결과에 아쉬움은 없습니까.

<>김차장=글쎄요. 저 자신이 후보로서 모자란 점도 있었겠지만, 한국이
WTO와 같은 중요 국제기구의 책임자를 배출할 만큼의 국가적 위상을 정립
하지는 못했지 않았느냐 하는 점에서 아쉬움이 없지는 않습니다.

-경선당시 외지에서 쓴 기사가 생각납니다. 월 스트리트 저널만 해도
"김철수 후보개인은 WTO사무총장이 되기에 충분한 경륜과 자격을 갖췄지만
한국이란 나라를 놓고 보면 그렇지가 않다"는 식으로 비판적 기사를 싣지
않았습니까.

<>김차장=아무래도 WTO총장 경선에서는 모범적으로 국제규범을 지키고
있는 나라의 후보가 유리하지 않았겠습니까.

그에 비해 한국은 아직 덜 개방된 분야가 있는게 사실이지요. 그래서 그런
평가가 나온 것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경선당시 김장관과 한국을 지지해준 나라들이 적지 않았지요.
일본을 비롯해 호주 인도 이집트등의 나라들이 그랬지요.

막판에 총장직 경선을 포기한 것은 그런 나라들엔 미안한 일일 텐데요.

<>김차장=사실 아시아지역의 모든 국가들과 아프리카.중동지역의 주요
개도국들이 저를 지지해 준 것은 경선결과를 떠나 한국외교의 큰 성과였다고
자부합니다.

사무총장 당선이라는 당초의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사무차장 자리를
따낸 것만 해도 한국과 개도국들엔 큰 의미가 있는 일이지요.

동북아에서는 처음으로 국제경제기구의 고위책임자 자리에 앉게 됐으니까
말입니다.

-어쨌든 김대사는 한국인으로는 첫 "세계시민"이 되시는 셈입니다. 3명의
형제분들도 모두 해외에서 활동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세계시민은 특정 국가의 국적개념에서 벗어난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묻습니다만 "세계시민"으로서 일하는 것과 "한국이 낳은 사무차장"
이란 상충되는 입장에 서게 될 경우도 많으리라고 봅니다.

예컨대 미국이 농산물분야등에서 한국을 WTO에 제소해 놓고 있는데 꽤나
난감해지지 않겠습니까.

<>김차장=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내가 한국 출신인 건 분명하지만 일단
WTO에 몸을 담고있는 이상 판단의 잣대는 어디까지나 "세계 시민"쪽에서
나오는게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만약 한국의 국익과 WTO의 원칙이 상충되는 일이 생긴다면 저는 사무차장
으로서 WTO입장을 더 챙겨야 된다는 점을 국민들이 이해해 주셔야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세계 시민의 입장에서 본 한국의 통상정책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상공자원부장관등으로 통상협상 일선을 진두지휘하면서 직접 겪었던
어려움도 한둘이 아니었을 텐데요.

<>김차장=우리가 스스로를 보는 눈과 바깥에서 한국을 보는 시각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점부터 인식하는게 중요하겠지요.

외부에서 보기엔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전형적일 만큼 무역진흥을 통해
고도성장을 실현한 나라이지요.

그런만큼 한국이 국제무역 질서를 형성하고 자유무역을 확대하는데 기여
해야 한다는 기대가 큰 게 사실이고요.

그러나 한국은 국제이슈에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한국경제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발전.성장해 나가려면 국민 모두가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스스로에 부여되는 의무를 다해나간다는 자세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의 통상관련 조직이 보다 분명하게 정립될 필요도
있을텐데요.

작년말 정부 조직개편을 했지만 통상관련 기능은 종전보다 오히려 더 분산
되는등 개악을 했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김차장=제가 아쉽게 생각하는 점이 바로 그겁니다. 구상공자원부를
이름만 통상산업부로 바꿨지 기능을 재정립하는데는 미흡하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지요.

통상분야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 누구에게 어떤 역할을 맡길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정부내에서 다시 토의가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요. 이 기회에 말씀해 주시지요.

<>김차장=주무부처를 정했으면 그 부처에 통상기능을 모아주는 일이 필요
하다고 생각합니다.

통상분야는 갈수록 더 전문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지요. 점점 복잡
다단해지고 있기도 하고요.

최종적인 조정은 다른 부처에 맡기더라도 최소한 일상적인 통상관련 업무는
어느 한 부처가 전문적으로 맡아 할 수 있도록 제도와 법률 인원등에서
지원을 몰아줘야 한다고 봅니다.

<<< 계 속 ... >>>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