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람들이 모이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가족처럼 불가분의 자연적 집단도 있고 회사처럼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모임도 있고 또 같은 학교출신의 동문모임도 있고 같은 취미를 가진 이들의
동호인 모임도 있다.

같은 즐거움을 느끼며 자연스럽게 서로가 서로에게 이끌려서 만들어진
동호인 모임이라면 내가 그안에 참가하여 크게 이익을 보지못하거나 때로는
다소 손해를 볼지라도 기꺼이 참가하고픈 무언가 매력이 있기마련이다.

그것은 바로 사람 사이의 정이 아닐까 한다.

다행히 필자 주변에도 서로의 정으로 이끌리고 같은 즐거움을 나누는
모임이 하나있다.

긴 시간금융계에 몸담았기때문에 대부분 금융계 인사들로 이루어진 이
모임은 등산이라는 공통분모를 안고있다.

모두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로,아니 산을 좋아한다기 보다는 산을 오르는
그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특별히 모임의 명칭은 없지만 자신을 정리하기 위해 산을 오르는데 꼭
타이틀이 있어야한다는 것은 어색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산을 오른다는 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정복의 의미도 있겠지만 필자
에게는 정리라는 의미가 크다.

한동안 바쁘게 지낸 시간들을 산을 오르며 하나씩 마음속에 정리할 수
있고 어느덧 정상에 올라서면 평온해지고 대범해진 자신을 발견하곤 역시
산을 찾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지기들 역시 그런 생각인지 우리들은 산을 오를때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다.

서로 말을 안해도 편안한 것은 오랜시간을 함께 보냈기때문이라고 생각
한다.

오히려 오르내리던 산길을 다시 찾고 이들 산들과 대화를 나누는 기쁨도
크다.

시간상 여유가 많지않아 멀리있는 산을 가는 것보다는 근교의 산을 자주
찾는 편이다.

비록 같은 산을 여러번 찾아도 지겹지않은 것은 그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기때문이다.

같은 길을 또다시 가게되어도 조금씩 변해있는 풀과 나무의 모습을 보는
것도 필자에게는 또다른 즐거움이다.

또 하산하여 산밑의 간이식당에 둘러앉아 먹는 도토리 묵과 동동주의
맛도 하루를 멋지게 마감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요소이다.

때로는 간단한 불고기에 소주 한잔씩 기울이는 것도 일미임에 틀림없다.

보고싶은 사람들과 함께 산을 갔다오면 어느덧 지나간 시간이 깨끗이
정리가 되어 차분한 마음으로 다시 일주일을 시작하는 활력이 생긴다.

오늘도 사무실 창 너머로 보이는 서초동 남쪽에 신록이 우거진 우면산을
바라보며 지기들과 함께 산에 오를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즐거워진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