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은 북경차관급회담에서 두번째 당국자 회담을 내달중 갖기로
합의했다.

이에따라 2차회담이 어떤 성격을 띠며 어떤 사안들이 논의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번 북경회담에서 쌀 문제 이외의 모종의 이면합의가 있었다는 건 다
알려진 비밀.

어렵사리 만난 남북간에 쌀문제만 협의하고 왔을리는 없다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특히 정부대표에 이석채재정경제원차관이 선정된 것은 쌀이외에 논의할
사항이 있었기때문이 아니냐는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번 이면합의의 주된 내용이 "경제적 사안"일 것이라는 설도 이런 이유
에서다.

따라서 2차회담의 주요의제는 "남북경제공동위의 본격가동"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이번 북경회담에서도 이 문제를 거론,공동위 개최를 강력히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측의 소극적인 자세로 결실을 맺지 못해 2차회담에서 이 문제를
정식으로 다룰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이차관은 경제공동위의 남측 위원장이다.

"(다른 사람이 아닌) 이차관이 북경에 간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정부
당국자)는 얘기이고 보면 이번 회담을 계기로 남북기본합의서에 기초한
5개의 남북공동위중 경제위를 제일 먼저 가동하겠다는 게 정부의 의도인
것 같다.

이와 함께 남북관계를 "탈정치.입경제"구도로 전환,북한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접촉빈도를 높여보자는 전략의 일환일수도 있다.

경제공동위가 생각보다 빨리 가동될 경우 남북간 경제.

교류협력은 상당한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현재 북측 공동위위원장은 김정우.

그는 북한의 대외경제정책을 총괄하는 대외경제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인물이다.

대남경제.무역의 창구인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한
김정우가 대화테이블에 나올 경우 사실상 남북간 경협은 당국의 보장아래
추진될수 있게 되는 셈이다.

김정우는 또 경제특구인 나진.선봉 개발책임을 맡고 있어 경우에 따라선
남측정부가 한국기업의 나진.선봉 투자를 독려하고 나설 가능성도 없지않다.

2차회담의 의제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또하나는 정상회담 개최문제다.

이번 북경회담의 양측대표는 사실상 남북한 최고통치권자의 직접지시로
움직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회담대표에 대한 신임 역시 두터울수 밖에 없다.

최고통치권자의 신임을 얻고 있는 인물끼리 5일간 얘기를 나누면서 "정상
회담" 얘기를 안꺼냈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김영삼대통령을 비롯 우리정부는 작년 김일성의 사망으로 성사를 코앞에
두고 좌초됐던 정상회담을 다시 추진한다는 입장을 줄곧 밝혀왔다.

물론 김정일이 아직 주석직을 승계하지 않고 있어 현재로선 회담의 상대가
없는 상태다.

그러나 김정일은 김일성사망 1주기(7월8일)를 넘겨 늦어도 9월쯤엔
주석직에 취임할 것으로 보여 내달중 열릴 2차회담에서는 정상회담 개최
문제가 심도있게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성급한 관측통들은 "올 가을에 정상회담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보고 있다.

김정일이 주석직에 공식 취임할 경우 남측 통치권자와의 대좌를 통해
자신의 권위를 대내외에 과시할 필요가 있기때문이라는 것이다.

2차 회담에선 또 8.15 광복절 행사를 남북공동으로 치르는 문제가 논의
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가 광복 50주년인 만큼 판문점과 서울 평양에서 범민족적 차원의
대규모 행사를 치름으로써 남북관계 개선에 획기적인 터전을 마련한다는 것.

이밖에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 재개등의 문제도 논의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1차회담 이후의 양측대표는 당분간은 이석채-전금철체제가 계속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뭣보다 이번 북경회담을 통해 어느 정도 신뢰를 구축해 놨고 2차 회담
이후에도 쌀문제는 계속 논의가 이뤄져야 하므로 굳이 기존 회담대표를
바꿀 이유가 별로 없기때문이다.

<김정욱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