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정권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 같습니까.

일부에선 보수대 개혁의 구도가 다시 일면서 중국이 다시금 패권주의로
치달을 가능성도 점치고 있는것 같은데..

<>시라토리교수=현재의 개방노선은 되돌이킬 수 없는 대세로 굳어졌다고
봅니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자유화 물결이 확대될 가능성이 큽니다.

일당독재체제가 무너지고 다당제로 이행해 갈 것이란 얘깁니다.

더구나 경제발전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정치분야도 변할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이나 개도국의 예가 그랬지 않습니까.

민주화 바람 같은것 말입니다.

-등소평사후 중국은 한동안 "치리정돈"에 전열을 가다듬을수 밖에 없다는
말씀인데, 그렇게 되면 동북아지역에서 일본의 정치적 파워가 상대적으로
더 막강해지겠지요.

일본 정치지도자들중엔 과거사에 대한 왜곡된 역사인식까지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않아 일본의 정치.군사대국화 움직임에 대해선 한국이나 중국
등 주변국들이 상당히 경계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일본국회의 지난번 부전결의만 해도 일종의 정치적 제스추어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시라토리교수=일본의 정치.군사대국화에 대한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특히 군사분야는 더 그렇습니다.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으로 볼때 일본은 더이상 징병제가 불가능한 상황
입니다.

경제학적으로 봐도 그렇습니다.

케니스 볼딩이 내놓은 "하부금경제"이론으로 설명해 볼까요.

볼딩은 군사 복지 교육등 3가지 예산 사이의 공통점에 착안해 이들 분야를
하부금경제(Grant Economy)라고 불렀습니다.

이들 분야의 예산은 확대재생산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증여는 있지만 댓가가 확실치 않다는 것이지요.

볼딩은 이 하부금경제가 전체 경제의 20%정도를 차지하고 그것이 적정선
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국방예산을 큰폭으로 늘리면 복지와 교육예산은 그만큼 줄어들수
밖에 없다는 얘깁니다.

만일 지금 일본에서 국방예산을 늘리고 복지.교육예산을 줄인다고 가정해
봅시다.

국민들의 곧바로 크게 반발하고 나설 겁니다.

그러니까 일본은 여태껏 그랬왔던 것처럼 부국약병정책을 취할수밖에
없다는 거죠.

-화제를 경제 쪽으로 돌려볼까요.

일본은 현재 엔고->일본기업의 경영합리화->무역수지흑자->엔고의 악순환을
겪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도에 지나친 저축과 낮은 생활수준, 고통스런 기업의 비용절감 노력등
일본경제는 어찌보면 어리석은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과감한 시장개방과 소비촉진을 통해 일본국민들의 생활수준을 높이고
결과적으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지는 않으십니까.

<>시라토리교수=물론 전세계 국가중 일본만이 흑자를 낸다는 건 용납될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정부가 나서서 해결할 일도 못된다고 봅니다.

미일 자동차분쟁만 해도 미정부가 나서서 수입을 막으려해도 미국소비자들
이 일본차를 선호하는 이상 그게 불가능하게 돼지요.

그런 일을 할수 없을 바에야 미국은 다른 대책을 쓰는게 좋지요.

예컨대 일본내에서 BMW나 벤츠 같은 유럽산 승용차가 왜 잘 팔리고 미국차
는 왜 안팔리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미국이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 한 일본의 막대한 무역흑자는 앞으로도
계속 불어날 수 밖에 없다는 말씀이군요.

<>시라토리교수=유감스럽지만 그렇다고 밖에 말씀드릴 수가 없군요.

요즘 각국간 무역경쟁에서 우열을 가름하는 잣대는 "정보"인데 이 분야에서
일본을 따라잡을만한 나라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일본사람들은 요즘 전세계의 뉴스를 안방에서 시청할수가 있습니다.
물론 편집되지 않고 각국에서 방영되는 그대로 시청할수 있습니다.

NHK는 오전에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스페인 뉴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저녁시간대엔 한국 중국 홍콩 태국등 아시아 국가들의 뉴스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들 나라들은 과연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예컨대 일본은 영국에
1백명이 넘는 특파원을 두고 있지만 영국은 겨우 10여명의 특파원만을
일본에 상주시키고 있을 뿐입니다.

정보가 너무 일방적으로 흐르는 셈이지요. 일본의 무역흑자를 탓하기전에
자국의 "정보적자" 해소방안을 마련하는게 더 시급하다는 얘기입니다.

한마디로 "정보격차"가 무역수지 격차의 주요인이 되고 있으니까요.

-일본은 무역흑자를 토대로 아시아에서의 경제공동체나 영향력있는 엔화
경제권을 결성할 것이라는 전망도 대두되고 있습니다만.

<>시라토리교수 =엔화가 아시아지역에서의 기축통화로 자리잡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지금처럼 엔화환율이 급등락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기축통화 역할을
할 수가 없습니다.

기축통화는 안정성이 가장 중요하거든요.

-엔고도 그 원인중의 하나지만 미국의 제조업은 최근 들어 경쟁력을 급속히
회복시켜 가고 있다 합니다.

이상스러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기업은 일본기업에는 못 당할
것이라는 전망이 여전한것 같습니다.

<>시라토리교수=글쎄요. 저는 그 반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미국과 일본의 노임수준을 비교하면 일본을 1백으로 할 때 미국은
85정도 밖에 안됩니다.

임금수준이 너무 높아 이제 더이상 대량생산체제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이 일본기업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동차업체들은 이를 피해 일찌감치 해외생산쪽으로 돌아서 버렸습니다.
지금 일본 국내에서 만든 차는 일본사람만이 구입하고 있고 미국등 해외에선
거의 해외생산분을 팔고 있습니다.

일본제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킬 요인은 또 있습니다. 바로 눈앞에 닥친
"고령화사회"의 도래가 그것입니다.

과거 2명이 1명의 노인을 부양하면 됐던 것이 앞으로는 1명이 4~7명의
노인을 부양해야 합니다.

고임금보다 고령화사회가 제조업체들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선 한국도 비슷한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인건비의 급격한 상승이라든지, 제조업 생산기지의 잇단 해외이전이라든지,
노인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등 한결같이 "일본 케이스"를
뒤따르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런 "한.일 동류현상"이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는 어떻게 나타날지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요.

<>시라토리교수=한국의 지자제 선거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잘
모르겠으나 지난번 도쿄도지사에 무소속 출마자가 당선된 것은 일본에
야당다운 야당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당이 싫으면 야당을 찍어야하는데 야당도 시원찮으니 무소속을 찍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도쿄도지사선거는 정당이냐 비정당이냐의 구도를 보여준 것이
됐지요.

<정리=김정욱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