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서해안 당진에서는 비록 막바지 선거열기에 가려지긴 했지만
한국철강산업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지도 모를 뜻깊은 행사가 있었다.

한보철강이 국내 최초의 박슬래브 열연강판(핫코일)공장을 준공, 본격
가동에 들어간 것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철강공장 하나 더 늘어난 것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반문할는지도 모르지만 한보의 이번 당진공장 준공은 단순한 철강공장준공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서해안 철강시대 개막이라는 의미는 물론이거니와 핫코일 경쟁시대의
개막,철강수급 불균형완화,민간 일관제철소 건립기반조성,차세대 첨단
설비 경쟁의 점화등 국내 철강산업의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상징적 의미가
이 공장 하나에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공장의 준공으로 한보는 이제 당진에 민간 기업으로서는 최대
규모인 연산 300만t 체제를 갖추었다고 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96년까지 연산 700만t 체제로 증설할 계획이라고
하니 민간 기업으로서의 그 진취적 자세에 놀라움을 금할수 없다.

한보의 이 대역사는 그동안 포철이 독점해온 국내 핫코일 시장에
경쟁체제를 도입했다는 점만으로도 그 의미가 크다.

물론 이 공장이 포철이라는 거대기업에 맞서 어느정도의 경쟁력을
가질지는 미지수이지만 전기로를 이용해 핫코일을 만드는 방식을
국내 첫 상용화했다는 점도 제철기술의 진일보로 평가할만 하다.

한보의 당진공장 가동은 철강산업 구조개편을 앞당길 것으로 보인다.

포철과 같은 일관제철소 건설을 계획중인 현대그룹이 행동에 나서면
현 체제의 붕괴는 시간문제라고 할수 있다.

당진공장 준공은 국내 핫코일 공급난을 완화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최근 경기호황이 지속되면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철강재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때에 생산을 시작하게 됐다는 것은 소비자나 한보측 모두에
다행이 아닐수 없다.

당진 철강공장의 가동은 또 서해안시대 개막을 알리는 상징이기도
하다.

중국과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서해안 시대"라는 말이 자주 입에
오르내리고 있지만 그 실체를 확인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포항 광양에 이은 제3의 철강단지가 서해안의 중심부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물론 한보의 투자계획에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당장 고철수입가격이 급등하고 있어 가격경쟁력이 걱정이 아닐수
없다.

여기에 박슬래브 공법으로 생산되는 핫코일은 품질이 떨어진다는
얘기도 있다.

또 700만t 체제를 갖추는데 드는 추가비용 2조3,000억원을 조달하는
문제도 그리 간단치만은 않을 것이다.

철강업계의 무분별한 증설경쟁이 몰고올 부작용을 걱정하는 소리도
들린다.

이 모든 지적들은 국내 철강산업의 한단계 도약을 위해 한보 뿐만
아니라 업계 전체가 풀어야 할 과제들이다.

한보의 의욕적인 철강단지 조성계획이 이같은 과제들을 극복하고
국내 철강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