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이념이나 명분을 떠나 그자체가 비극입니다"

한병익 근로복지공단고문(63)은 최전선병사로서 자신이 겪은 6.25전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난 그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염증을 느끼고
18살이던 50년12월 흥남철수때 국군에 입대,월남했다.

그후 수도사단 기갑연대 수색대원으로 설악산 향로봉등 동부전선의
무수한 전투를 넘나들며 적의 포로가 되거나 부상을 입는등 이루 말할
수없는 고초를 겪었다.

한고문은 최근 이같은 체험을 자서전 형식으로 정리,230여쪽에
이르는 "지워지지않는 그림자"를 펴냈다.

통상 전쟁관련 서적들이 특정 개인이나 전투집단의 무훈을 다루거나
다소 과장돼있는 것과 달리 극한 상황에 처한 병사들의 인간적인
모습이 잘 묘사돼있다.

그는 "어린 병사들의 밑바닥생활과 비정한 전쟁양상을 다룸으로써
전쟁에 대한 공포와 참혹함을 진솔하게 전하고 싶었다"고 집필동기를
밝혔다.

한고문은 이책에서 인민군뿐만 아니라 국군들의 잔혹행위까지도
여과없이 그리고있으며 항상 적의 기습에 노출돼있는 수색대의 어린
병사가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을 리얼하게 표현하고있다.

또 향로봉의 치열했던 여름전투를 마친후 "전쟁은 오래 끌수록 잔혹한
행위를 자아내고 인간의 부끄러운 면을 드러내기때문에 하루빨리 끝내야
한다"는당시 생각을 전하고있다.

그의 자서전은 6.25전쟁에 대한 일반인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내용도
담고있어 관심을 끌고있다.

인민군에게 포로가 돼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으나 인민군장교의
공산주의식 교화(?)를 받고 풀려난 얘기를 비롯해 인민군포로를 잡아
적진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포로들과 함께 "따오기"를 합창하는 장면등은
쉽게 이해할수없는 대목들이다.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포로들과 생활하는동안 이상할 정도로
적대감을 느끼지못했으며 그쪽 또한 우리에게 적의를 보이지않아
도대체 무엇때문에 전쟁을 하는것인지 헷갈릴 때가 많았습니다"

전쟁터에 들어선 이상 생존만이 문제가 될뿐,이데올로기나 피아의
개념은 흐려질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인민군에게 느꼈던 묘한 연민은 전쟁에 대해 비슷한 공포를 지닌
사람들간의 감정이었던 셈이다.

그는 그러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절박하면 할수록 그만큼 생명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자신의 체험을
인간애로 승화시키려는 자세를 잊지않았다.

한고문은 전쟁이 끝난후 경북대 법대를 졸업하고 57년 당시 보건사회부
노동국에서 공무원생활을 시작했다.

그후 30여년간 노동부 노정국장 근로기준국장 직업훈련국장등 요직을
두루거친후 지난 87년 공직에서 은퇴,현재 근로복지공단 고문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있다.

<조일훈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