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과 함께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꼽히는 백석의 삶과 문학을 재조명
하는 "백석되살리기" 작업이 활기를 띠고 있다.

분단의 수렁속에서 월북시인이 아니면서도 월북시인 이상으로 부당하게
취급받던 그가 해금된지 8년만에 본격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것.

올해초 백석의 시와 번역소설 동화등을 담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지나간)이 나온데 이어 최근에는 다시 백석의 연인이던 김자야씨(79)의
회고록 "내사랑 백석"(문학동네간)이 출간됐다.

백석(1912~?)에 관한 자료는 87년 간행된 "백석시전집"(창작과비평사간)과
그가 만주로 떠나기 전에 남긴 시집 "사슴"(36년)이 거의 전부인 실정.

"내사랑 백석"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백석의 인간적인 면모를 담고 있어
백석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책에는 백석이 세번이나 결혼하게 된 사연을 비롯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허준과 정근양의 모습, 청진동시절의 일화, 만주 신경으로 떠나게 된 배경
등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자야"는 백석이 당시선집 "자야오가"의 제목을 보고 그녀에게 지어준
이름.

26살의 청년시인 백석을 처음 만났을때 그녀는 22살이었으며 당시 백석은
함흥 영생여고보의 영어교사, 그녀는 조선권번의 기생이었다.

그로부터 3년간 두사람은 함흥과 서울의 청진동 명륜동으로 거처를 옮겨
가며 절절한 사랑을 나눈다.

이러한 상황은 백석의 시에 그대로 투영된다.

그가 자야에게 건네준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에는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밤은 눈이 푹푹 나린다/./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나타샤가 아니올리 없다/언제 벌써 내속에 고조곤히와
이야기한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여기서 나타샤는 바로 자야를 가리키는
것.

그의 또다른 작품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에서 아내와 집은 자야와 청진동집을
의미한다.

백석은 명동 산책길에 그녀로부터 선물받은 넥타이를 유독 좋아했는데
이는 그의 시 "이렇게 외면하고"에 "언제나 꼭같은 넥타이를 매고"라는
구절로 나타난다.

그녀는 또 "백석의 본명은 백기행으로 알려져 있지만 함흥에서 청진동으로
오는 편지의 겉봉에는 백기연으로 적혀있었다"고 밝혀 관심을 모은다.

한편 송준씨(33)가 펴낸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전4권중 2권출간)에는
백석의 일대기와 40~60년대 만주 북한에서 쓴 시 40여편 번역시 12편이
실려 있다.

이책에는 그가 일제때 번역한 솔로호프의 "고요한 돈강"과 러시아작가
파블렝코의 "행복" 그리고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시집 "우렁이"등도 들어
있으며 북한에서 펴낸 시집도 소개돼있다.

< 고두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