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대기업그룹의 기획조정실장 L씨는 요즘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은
심경이다.

내달 1일 취임을 앞둔 민선 시.도지사들로부터 "이왕이면 우리 지역에
투자해 달라"는 주문이 벌써부터 쇄도하고 있어서다.

이 그룹이 검토단계에 있는 투자계획까지 감쪽같이 알아채 갖고는
"A도는 공장이 들어설만큼 들어서 있지 않느냐. 이젠 우리 B도에 투자해 줄
차례"라는 식의 "읍소반.시위반"의 압력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

L실장은 이런 현상을 공해산업 입지에 맹반대하고 있는 각 지역주민들의
이른바 "님비(Not In My Back-yard)현상"과 정반대되는, 말하자면 "핌비
(PIMBY=Please In My Back-yard)현상"이라고 정의한다.

비단 L실장이 몸담고 있는 그룹뿐 아니라 재계사람들이 "지자제 이후"를
걱정할 때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님비"못지 않게 "핌비현상"도 기승을
부릴 것이란 우려다.

대표적인게 대구지역의 승용차공장 유치작전.

대구시민들은 지난해 삼성그룹이 승용차공장 후보지로 부산 신호공단을
지목하자 "삼성제품 불매운동"을 벌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기까지 했다.

광주시의회는 작년 7월 역내공단의 투자유치확대를 겨냥해 "내고장
상품쓰기 운동"을 실시키로 결의하기도 했다.

올들어서는 전남 순천상공회의소에서 정부가 현대그룹이 추진하고 있는
율촌공단조성에 미온적이라며 반발을 계속하고 있다.

S그룹의 H상무는 이런 "핌비현상"에 대해 "지자체간의 국내기업 투자
유치전은 행정서비스 개선경쟁등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여 기업 입장에선
일단 긍정적"이라면서도 "다만 지자체들의 유치경쟁은 어디까지나 선의의
경쟁으로 이뤄져야지 기업들에 대한 부당한 압력으로 귀결돼서는 안될 것"
이라고 주문한다.

H그룹 P이사도 이런 "핌비 현상"에 대해 기대반.우려반이긴 마찬가지다.

"기대반"은 그동안 중앙정부가 미온적으로 추진해온 각종 입지관련 행정
규제가 보다 완화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땅값 할인제공등 파격적인 요건을 내세워 한국기업들을 손짓해
온 영국 프랑스 캐나다같은 선진 외국들이 한없이 부럽기만 했으나 이젠
국내 지자체들도 "각성"하지 않겠느냐"는 말과 함께.

실제로 15개 시.도의 민선자치단체장들은 민간기업 유치를 위해 공단
분양가를 인하하거나 <>세금 감면 <>지방신용보증기구 신설등의 각종 투자
유인책을 다투어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반대로 "우려반"도 가볍게 접어둘 사안은 아니다.

"인프라"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일부 지자체들은 "이미지 관리"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는 대기업그룹들을 주로 겨냥해 "투자의 지역안배"라는
비경제논리를 앞세우는 경우가 더 많다는 푸념도 들린다.

이에따라 일부 그룹은 "구색 갖추기"차원에서 마지못해 투자분산을 검토
하고 있다는 소리도 나온다.

기업들은 이제 "님비"에 울고 "핌비"에 떨떠름해야 하는 판이다.

<이학영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