싶었어요"
33시간동안 삼풍백화점 지하1층 철제더미 속에 갇혀 있다가 1일 새벽
2시40분쯤에 구조된 박선미씨(23.유로통상(주)의류코너 판매원)와
임해진씨(25.")는 사고당시의 절망감을 이렇게 말했다.
"시원한 얼음을 탄 물을 한 바가지 마시고 싶었어요"
이보다 3시간 뒤에 구조된 장미숙씨(24.랑콤 화장품코너 판매원)와
정복실씨(25.하나양산코너 판매원)는 암흑과 공포속에서 36시간에
걸친 사투끝에 소원을 이루었다.
화제의 주인공이 된 4명은 모두 백화점 1층 잡화부에서 근무하고
있던 여직원들-.
이들은 붕괴후 같은 장소에 매몰됐던 사람들이다.
만 하루반이 지나 기적같이구조됨으로써 악천후속에 구조작업을 펴왔던
구조대와 지원봉사시민들에게 큰 힘과 보람을 가져다주었다.
이들은 사고당일 오후5시55분쯤 갑자기 뒤에서 몰아닥친 강한 회오리
바람에 몸이 날리면서 어디론가 빨려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곧 천정이 무너져 내리면서 철근과 골재더미가 이들 위로 덮쳤다.
장씨와 정씨는 몸이 엉겨붙은채로 나동그라졌는데 몸 곳곳에 박힌
유리조각때문에 조금만 움직여도 상처가났다.
보이지는 않지만 건너편에는 박씨와 임씨가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장씨는 잠들면 죽는다는 생각에 정씨와 계속 대화를 나눴다.
"곧 구조대가올거야.오늘 에어콘이 가동이 안됐는데 건물결함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 "나도 오늘 하루종일 불안하고 기분이 안좋았어"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의식이 혼미해져 갔다.
정씨는 자꾸 헛소리를 해댔다.
"아버지! 소여물 가져왔어요. 오빠! 머리가 아파 핀 좀 빼줘"
장씨는 이런 정씨를 달래려고 이얘기 저얘기를 했다.
하지만 자신도 곧 잠이 들고 말았다.
장씨는 꿈을 꿨다.
1층 매장을 마구 치우는 꿈.어머니를 만나는 꿈.어제 말다툼한 약혼자를
만나는 꿈. 선후배지간인 박씨와 임씨는 함께 "살려달라"는 소리를
수백번 질렀다.
소리치다 울다가 다시 소리치고 벽을 두드리며 또 다시 울고..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돌과 흙이 밀려 내리면서 공간은 줄어들었고 구부린
몸은 움직일 수 없는 고통이 계속됐다.
두사람은 고통을 견디다 못해 옆에 있던 돌로서로의 손목을 끊어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박씨는 계속 헛소리를 해댔다. "<><>엄마 할인해 드릴께요"
몇차례 구조대가 왔지만 "살려달라"는 소리를 못듣고 그냥 지나쳤다.
이들에게 가장 절망스러웠던 순간이었다.
모두 엉엉 울었다.
구조반이 박씨와 임씨를 먼저 구출하는 것을 알게된 장씨와 정씨는
안도와 함께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들이 살아온 해보다도 더 길게 느껴졌던 36시간의
악몽을 뒤로한 채 병원으로 향했다.
< 한은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