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기업회장은 어느주말 EU의 실력자인 리언 브리튼집행위원을
파리로 초청했다. 그를 통해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파리를 좋아하는
브리튼집행위원은 이를 수락, 그와함께 파리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함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브리튼집행위원은 그러나 "자신은 집행위의
구성원에 불과할뿐 최종결정권을 갖고 있지 않다"는 말을 남긴채 파리를
떠났다"

브뤼셀 로비스트가에 나도는 이일화는 로비대상에 대한 중요하는 해답을
제시해준다.

EU의 실력자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를 쥐고있다는 생각으로 접근
했다가는 돈과 시간만 허비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윗분만 잡으면 된다"는 한국식 사고방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 브뤼셀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상대로 로비를 해야하는 것인가.

EU의 입법등 모든 결정절차는 집행위가 제안하고 회원국 각료모임인
이사회가 최종 승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문위격인 경제사회위원회 회원국상주대표들의 모임인 코레퍼(COREPER)
등이 있으나 그 핵심은 역시 23개 총국(DG 국장은 차관급)으로 구성된
집행위다.

이는 EU의 반덤핑 심사절차를 살펴보면 손쉽게 알수 있다.

EU의 생산업체나 관련 산업단체가 역외산 제품을 반덤핑 제소하면 집행위
대외관계총국(DGI)은 이를 심사, 접수여부를 결정한다.

집행위는 접수를 결정하는 즉시 관보를 통해 이 사실을 공지한후 15개
회원국 대표로 구성된 반덤핑자문위를 열어 조사개시 여부를 논의한다.

연간 11회 열리는 자문위의 건의를 분석, 제소가 타당성이 있다고 인정되면
집행위는 조사에 착수한다.

집행위는 대상업체의 현지조사및 청문회등을 진행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덤핑여부에 대한 예비관정을 내린다.

이후 최장 6개월이내 집행위는 이 사회의 승인을 받아 확정판정을 내린다.

확정판정이 내려지면 관련제품은 5년간 반덤핑관세를 물어야 유럽에 수출이
가능해진다.

반덤핑절차의 대부분 업무가 EU집행위에 위임돼 있는 셈이다.

따라서 로비활동은 유럽업체들의 제소장이 접수되면 집행위 관계자를 통해
그 내용을 입수하는 작업에서부터 시작된다.

제소이유와 관련업체 그리고 요구하는 반덤핑마진율등은 일반적으로 공개
되지 않기 때문에 이 과정부터 결코 쉽지가 않다.

자료심사및 현지 심사를 담당하는 집행위 관련직원에 대한 접촉도 상당히
중요하다.

자료를 성실히 제공하는 반덤핑의 부당성을 열심히 주장하는 논리를 개발해
내야한다.

덤핑마진을 계산하는데 집행위가 갖는 재량권이 10%정도에 이르는등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업체의 제소로 설치된 관세무역일반협정(GATT)내 분쟁해결패널이
"EU가 일본산 오디오테이프에 대한 반덤핑마진율을 계산하면서 일본 내수가
산정시는 광고비등 간접판매비를 포함시킨 반면 수출가에는 이를 제외,
마진율을 높게 책정한 것은 오류"라고 판정한 사실이 이를 입증해준다.

벨기에 루벵대 세계경제전략연구소의 조철제연구원도 "총국장및 집행위원
에까지 올라온 보고서의 내용이 변경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과는 달리 집행위외에도 반당핑자문위에 참석하는 15개국 정부를 대상
으로 "반대" 로비를 진행하는 절차도 중요하다.

미국은 상무부및 무역위원회(ITC)관리들이 모든 결정을 하나 EU의 최종
결정은 15개 회원국의 투표로 확정되기 때문이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네덜란드 필립스가 한국산 VTR및 그 부품을 반덤핑
제소했을때 삼성전자는 스페인 LG전자는 독일 대우전자는 영국등 가전3사가
현지공장을 갖고 있는 정부를 대상으로 로비를 펼친 것이 그 예이다.

유럽전략 로빙네트워크사의 사이몬 레포드하워드씨는 "영향력을 미치려면
브뤼셀이나 스트라스부르보다는 본 파리 로마로 가는게 났다"며 범유럽
차원의 로비를 강조하기도 했다.

이밖에 소비자단체들에 호소하는 방법도 유효하다.

중국이 금년도 완구류수출 쿼터를 상당히 늘릴수 있었던 것도 완구류 수입
업자들의 로비 덕분이다.

또 지난 92년 미국과 EU가 한국산 반도체에 대해 반덤핑제소를 했을때
반도체 수요업체인 컴퓨터업계를 동원, 상당한 효과를 봤다.

지난 93년 체결된 마스트리히트조약에 따라 유럽의회의 권한이 점차
강해지면서 그 본부가 잇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를 찾는 로비스트들도
늘고 있는 것도 눈여겨 볼만한 변화이다.

한국산 공산품에 대한 일반특혜관세제도(GSP)의 중단일정이 당초 집행위
결정보다 6개월이상 앞당겨진 것도 유럽의회의 건의를 받아들인 결과였다.

대EU로비의 핵심은 역시 EU집행위이다.

그러나 국가연합체인 만큼 미국보다는 로비대상의 폭이 상당히 다양하다.

로비능력에 따라 그만큼 효롸를 얻을수 있는 길이 많다는 얘기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