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하남공단의 삼성전자 냉장고 공장.

여러가지 모델의 냉장고가 동시에 조립라인을 타고 흐른다.

냉동실이 아래에 붙어있는 "5285"모델이 지나가고 나면 도어에
물디스펜서가 부착된 "L모델"이 뒤를 잇는다.

다음엔 냉장실이 아래에 있는 "5275"모델이 흘러가는 식이다.

같은 모델의 냉장고가 연달아 조립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이른바 "혼류 생산방식".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세계 제패를 뒷받침한 생산기술이다.

"필요한 제품을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만" 생산한다는 혼류방식이 국내
에서, 그것도 냉장고 생산에 적용되고 있는 것.

왜 혼류방식이 필요한가.

답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다"(안광덕 냉장고사업본부과장).

지향점은 무엇인가.

"과잉생산 과잉재고의 낭비를 줄이자는 것"(황남수 제조총괄부장)이다.

광주공장은 혼류방식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소비자들의 다양한 니즈에 대응하면서도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혼류가 유일한 선택"(최진호 생산본부장)이기 때문이다.

광주공장 냉장고 라인은 2개층의 총 4백m.

혼류생산의 출발점은 2층 전산실에 위치한 호스트 컴퓨터다.

서울 성수동 삼성전자 대리점이 522리터 용량의 백색냉장고(모델명
SR-L5275T)를 주문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모델형식은 리얼타임으로 LAN(근거리통신망)을 통해 광주공장 호스트
컴퓨터로 입력된다.

동시에 호스트 컴퓨터는 이 정보를 자재창고 발포라인 부품조립라인으로
각각 전송한다.

강판 투입공정에서부터 혼류생산의 비밀은 숨어있다.

입력된 정보에 따라 모델마다 치수가 다른 강판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플렉시블 금형이 강판을 성형하면 발포라인에서는 울트라센서가 발포제의
양을 조절한다.

기종 변경에 걸리는 시간은 제로.

라인에 모델이 흐르는 즉시 리얼타임으로 발포제의 양이나 발포형식이
결정된다.

기존 수원공장에서 20분 걸리던 것을 전산제어를 통해 단축했다.

혼류생산방식이 아니면 생각할 수 없는 공정상의 혁신이다.

강판투입에서부터 냉장고가 포장돼 출고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2시간
23분.

똑같은 냉장고 생산공장인 수원은 라인길이 8백m에 사이클타임은 17시간.

주문에서 생산계획 조립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정이 컴퓨터로 통제되는
생산기술의 승리다.

투입인원을 보면 생산성 향상의 효과는 더욱 두드러진다.

광주공장의 라인 하나당 투입되는 인원은 1백20명.

수원공장(2백47명)의 절반 수준이다.

"물건이 부족해 만들기만 하면 팔리던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물건이 어느
정도 팔릴지 알수 없게 돼 있다"(이종원 경영지원팀장).

수요를 예측해 계획생산을 할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판매처를 알고나서 생산계획을 세우는 방식으로는 납기를 맞출
수 없다.

대량생산이라는 "상식"에 반하는 "혼류"가 필요한 이유다.

광주공장은 오는 97년까지 2개 라인을 증설한다.

그때는 총 3개 라인에서 모두 17가지 모델의 냉장고가 생산된다.

인원과 자재의 조그마한 낭비도 허용하지 않는 것.

그것이 광주공장의 목표이자 혼류생산의 사상이다.

< 이의철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