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전래의 가난한 살림을 풍성하게 만들려고 동분서주 하다보니 우리는
짧은 기간에 어느 정도 경제기적을 이뤄냈다.

그러나 정신문화의 파괴라는 엄청나게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향토문화보존에 미력이나마 뜻을 같이하는 우리 일곱명은 경제발전의
밑바닥에 사장된 귀중한 문화의 맥을 잇고자 1978년 이 모임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예천향토문화연구회".

올해 7월 현재 24명으로 회원수가 늘었다.

전통적으로 보수성이 강한 예천도 새마을운동의 물결이 휩쓸고 가는 바람
에 동신목이 쓰러지고 성황당이 부숴지고 장승이 넘어지는등 불도저의 세례
를 톡톡히 받았다.

우리 회원들은 자취를 감추는 문화유적을 찾아서 군내 800개 마을을
누비며 이를 카메라에 담고 관련문헌을 수집.기록하고 있으며 또한 문화원과
제휴해 매년 "예천문화"라는 책자를 발간하고 있다.

"예천사료"는 14집까지 햇빛을 봤다.

1661년 편찬된 최초의 예천군지 "양양지"를 우리말로 번역한 것은 무척
힘든 작업이었지만 가슴뿌듯한 추억거리이기도 하다.

"내고장 예천", "예천의 숨결", "예천촌락사" 등이 이미 출간됐으며 현재
"예천문화유적지도", "예천금석문집"이 편집중에 있다.

또한 "예천의 민속과 설화"의 자료수집이 진행되고 있으며 그 일부가
방송매체를 통해 소개되고 있어 보람을 느낀다.

고서더미속에 파묻혀 살다보니 회원들은 한여름의 찌는 듯한 더위도 별로
느끼지 못하나 퀴퀴한 책냄새를 감내하고 있는 가족들에게는 조금 미안한
느낌이 든다.

회원들의 면면을 여기 소개한다.

국사편찬 위원회지역사료조사위원이기도 한 필자가 회장으로 잔심부름을
맡아보고 있으며 백병구회원(예천문화원장)은 전적의 현대적 해석에 조예가
깊다.

진성규회원(중앙대 교수)은 고려사전문가로서 현장에서 즉석강의로 이름이
높다.

김봉균회원(교육부사무관)은 불교문화에 일가견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대표적 고찬의 하나인 용문사의 유래를 해설할 때면 회원들의 감탄을
자아내곤 한다.

황하량회원(전 예천중학교장)은 전설분야에 해박해 갖가지 납량시리즈(?)
로 회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있다.

건축문화재에 밝은 김경두회원(예천군청공보실문화재당)은 본회의 총무
로서 사전답사와 온갖 궂은 일을 챙기는데 매우 헌신적이다.

김명회회원(풍양약국 대표)은 풍양지방의 유적을 훤히 꿰뚫고 있으며
김상문회원(전 예천군청공보실 직원)은 고대사연구에 남다른 열성을 보이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