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빠르다.

김일성 북한주석의 돌연 사망으로 나라 안팎이 떠들썩했었는데 오늘이
어느새 한 돌이다.

하지만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후계문제를 비롯한 북한진로의 새 방향을
잡을수 없었던 점에선 1년이 더디고 지루했다.

그의 사망전 몇달간의 북한 동향은 희비 교차속에 숨가빴다.

3월에 핵사찰을 정면 거부,세계를 경악케 하더니 6월에는 입북한
카터씨의 중재를 받아들여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 극적 합의,일시에
흥분의 도가니를 만들었다.

그러나 지난1년 세계 어느 전문기관도 풀수 없었던 최대의 수수께끼는
언필칭한 국가조직에서 원수자리가 그리 오래 메워지지 않을 수도
있느냐는 의문이었다.

그런데 1주기를 하루앞둔 7일현재 그같은 현상에는 변화가 없다.

언제나 처럼 국내외 관계자들의 비공식 분석만이 나돌 뿐이다.

첫째는 계승자가 김정일에 틀림없다는데 별 이견이 없다.

관심의 초점이던 후계자교체 가능성이 배제된 점에서 진척이라면
진척이다.

일부에서 당 총비서직 하나만 승계하고 국가 주석직은 맡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런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승계 시기에는 아직 폭이 커서 1주기를 그냥 지나치면 8.15,
정부수립기념 9.9절,창당기념 10월10일의 셋중 하나되 그중 10월이 가장
유력하다는 정도다.

세삼 고금동서의 어느나라 치고 1인자 자리가 이런 오리무중을 헤매는
경우를 누구도 알지 못한다.

더 이상한 일이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조직이 와해되지 않고 1년을
움직여 온다는 사실이며 그 자체를 기적이랄수 있을 정도다.

사실은 여기 묘미가 있다.

단순히 공산주의라거나,전체주의라거나 하는 평범한 설명으로 충족되지
않는 바로 북한 특유의 현상이다.

크렘린의 권력승계 과정에서도 단 하루의 공백이 허용된적 없고 더구나
히틀러 무솔리니에 이르러는 그 대체조차 상정할수 없었다.

이 희한한 북한 정치 사회 조직의 특징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점에 관해 바야흐로 세계는 당혹하고 있다.

특히 지난 4월 평양 국제체전에서 수만명 어린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순간
웃다가 순간 울며 연출하는 매스게임을 목격하고 돌아온 서방인들은 그
대중마취의 비결을 풀지 못하고 불가사의라 하고 있다.

바로 여기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경수로 식량원조 대화도 좋고 필요하지만 그 어느 것을 한다 해서
북한이 갑자기 변하리라는 기대는 금물임을 직시해야 한다.

그러한 일희일비는 이미 그동안 한 것으로 충분하다.

소중한 것은 내가 이루겠다는 식의 조급한 마음이 아니라 더디지만
한발한발,후임자들이 꾸준히 밀고 나가게 만든다는 역사통찰적 안목과
끈기다.

북한이 이미 가장 치부인 부족 식량의 남한쌀 보충을 시작한 이상,
체제붕괴가 오지 않는 한도에서 자력갱생 아닌 개방과 교류로 경제난국
타개에 나설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럴수록 끝까지 견디며 대화 교류 협력 평화정착 통일의 긴 여정을
축차로 밟아가는 일이 중요하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