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이 사망한 지 꼭 1년.

지난 1년간 북한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지난해 김일성이 갑작스레 사망했을때 향후의 북한체제, 한반도정세,
남북관계 등에 관한 전망이 국내외에서 봇물 터지듯 쏟아졌었다.

당시 나온 전망들은 크게 두갈래였다.

그 하나는 김일성 사후의 정치기반을 확고히 하기위해 김정일은 주민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문호를 꽁꽁 걸어잠글 것이라는 것.

다른 하나는 민심을 얻기위해선 심각한 경제난을 타개하는 수밖에 없고
그러기 위해서는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김일성 사후전망에 대한 평가는 그러나 1년이 지난 현재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줄수 없는 상황이라고 할수 있다.

일종의 절충형이 돼버렸다고나 할까.

물론 북한의 대남정책이나 대외정책 기조가 근본적으로 바뀐 게 없다는
지적이 지배적이긴 하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 일본등 서방과의 관계개선에는 전에 없는 적극성을
띠며 접근을 꾀하고 있다.

따라서 지난 1년간 북한은 실용주의 노선은 강화하되 대주민 통제는
더욱 확고히 하는 체제관리 전략을 구사해 왔다고 할수 있다.

쉽게 말해 북한은 지금 경제난을 타개하고 서방과의 관계를 개선하면서도
체제를 더욱 확고히 해야만하는 딜레마에 빠져있는 셈이다.

우선 지난 1년간 북한의 대내전략을 보자.

김정일은 김일성 사후 이른바 유훈통치를 통한 사상교육 강화에 전념을
쏟아왔다.

김정일의 이름으로 발표된 여러 글에서 "사회주의의 변질은 사상의 변질
로부터 시작되며 사상전선이 와해되면 사회주의의 모든 전선이 무너진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김정일이 사상통제를 강화할수 밖에 없는 것은 김일성 사망당시의
북한이 총체적 위기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북한은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국제적 고립이 심화되면서 체제유지의
돌파구를 찾아야하는 상황이었다.

또 경제난 해결책의 일환으로 나진.선봉지역에 경제특구를 설정했으나
서방의 외면으로 별 진전도 못본채 경제상황은 최악의 지경에 이르렀다.

설상가상으로 김일성이 사망,북한주민들은 정신적 아노미 상태에 빠져
들었다.

이런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김정일은 국제적 고립탈피와 경제호전을 위해
유훈통치라는 명분으로 과도기적 위기관리를 할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그간의 통치체제 역시 과도기적 상황하에서 김일성이 확립해 놓은 유일
지도체제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해 왔다.

따라서 김정일은 카리스마 구축을 위한 우상화작업을 꾸준히 전개해 왔고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집단지도체제로의 이행 전망도 이같은 이유로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남정책의 경우도 지난 1년간 큰 줄기에는 변화가 없었다.

물론 경수로제공과정에서 한국의 중심적 역할을 받아들이고 이번에 남한
쌀을 수용키로 한 것은 진일보한 자세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대미,대일관계 개선을 위한 최소한의 제스추어
였을 뿐 대남관계 개선이 주목적은 아니었다.

북한은 여전히 남한배제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최소한 정치분야에선 그렇다.

다만 경제분야에서는 다소의 신축성을 내비치고 있다.

당국차원이 아닌 민간차원의 경협은 북쪽에서 오히려 환영하는 입장이다.

한마디로 북한은 대남관계에 있어서 "정경분리"원칙을 견지해왔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이같은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쌀제공을 계기로한 남북고위급회담이 진척을 보이고 당국간 대화가
활성화될 경우 남북간의 화두는 자연스레 정치분야 쪽으로도 옮겨갈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김일성사후 유독 변화노력을 기울이는 부분은 대외관계쪽이다.

특히 미일과의 관계개선 움직임이 최근들어 눈에 띄게 활발해지고있다.

이는 북한이 실용외교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는 증좌다.

특히 미국과는 직접대면을 시도, 연락사무소 개설등을 통한 완전한 "관계
정상화"를 꾀하고 있다.

북한의 이같은 대서방 접근노력은 그러나 실용주의 외교노선으로의 전환
이라는 분석과 함께 실패한 내치를 외교성과로 만회, 김정일의 권력승계
작업을 순조롭게 하기위한 전략의 일환이라는 평가도 있다.

<김정욱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