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도 정기국회에서 "술취한 법안"이라는 비난까지 들었던 주세법개정안이
지난 15일 폐막된 임시국회에서 전격 통과됐다.

의원입법으로 발의돼 임시국회에서 최종 표결처리된 이 법안의 골자는
한마디로 전국의 소주시장을 법으로 강제 분할하겠다는 것이다.

이 법이 몰고올 파장이나 부작용이 심상치 않을 것이라는 점은 짐작하기에
어렵지 않다.

이 법안은 지난해 처음 국회에 제출됐을 때부터 위헌시비에 휘말려 왔다.

당시 정기국회에 제출된 이 개정안 내용은 소주업체의 시장점유율 제한
이었으나 정부와 일부 의원들의 반발에 밀려 법사위에 계류된 상태로 정기
국회를 넘기고 말았다.

그뒤 두차례나 열린 임시국회에서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더니 삼풍백화점
사고수습과 관련한 민생현안을 다루기 위해 소집된 이번 임시국회에서
자도주 의무판매제라는 수정내용으로 기습처리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삼풍백화점 붕괴라는 미증유의 재난을 겪고 있다.

민심도 흉흉한 상황이다.

게다가 집권당에 대한 국민의 외면및 김대중 신당창당과 관련한 야당분열
등으로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이 별로 곱지 않은 때다.

이런 시기에 국회가 앞장서서 국민의 마음을 다독거려 주지는 못할 망정
위헌소지 논란이 있는 주세법개정안을 끼워넣 기식으로 어물쩡 처리한
처사는 도무지 납득할수 없다.

이번 국회에서 주세법개정안이 전격 통과된 것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국회가
최소한의 국민정서조차 무시하는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보도에 따르면 국회는 이 법안을 불과 이틀동안 비공개 심의한뒤 충분한
토론절차도 거치지 않은채 기습 통과시켰다고 한다.

우리는 국회가 주세법개정안을 그토록 졸속처리해야 할 만큼 절박한 사정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그 배경이 무엇이든 국회가 국민적 관심사보다 업계의 이해에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인데 대해 그저 말문이 막힐 뿐이다.

개정주세법이 갖는 문제는 한 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그것이 헌법의 기본정신인 자유시장 경제원리와 배치된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시장경제질서 아래서 주류 판매업자들에게 특정제품의 구입을 강요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민간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제한하는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소비자들이 구미에 맞는 술을 마실 수있는 권리를 법으로
빼앗는 셈이 된다.

다음으로 개정법은 공정거래법의 제규정과도 상치된다.

공정거래법은 독과점의 폐해를 방지하고 시장지배 사업자의 우월적 지위
남용을 규제하는 각종 제도적 장치를 강구하고 있다.

그런데 개정법은 법으로 소주의 불공정거래를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이런 식으로 지역이기를 추구해서는 올바른 지방화시대도, 지역경제
개발도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는 점이다.

개정 주세법은 우리경제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려는 것과 같다.

헌법제53조는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경우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할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귀추를 지켜보고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