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정보통신업계를 중심으로 거세지기 시작한 미국 산업계의 인수/
합병(M&A) 바람이 올해부터 금융업계로 확산되고 있다.

이에따라 미국 은행들의 대형화, 탈지방화및 국제화추세가 가속화될 전망
이다.

미국에서는 지난 한달동안 3건의 거대한 은행합병계획이 발표됐다.

6월20일 자산규모상 미국 9위은행인 퍼스트유니온(노스캐롤라이나주)과
25위은행인 퍼스트피델리티(뉴저지주)가 합병하겠다고 발표한데 이어 지난
12일에는 10위은행 퍼스트시카고(시카고)와 18위은행 NBD밴코프
(디트로이트)가 합병키로 합의했다.

퍼스트유니온과 퍼스트피델리티의 합병은 주식거래금액이 54억달러에
달하는 미국최대의 은행합병이다.

퍼스트시카고와 NBD밴코프의 합병이 발표되기 이틀전인 지난 10일에는
PNC뱅크가 지방은행 미들랜틱을 28억4천만달러에 합병키로 했다.

최근 은행합병계획이 잇따라 발표되자 미국 금융가에는 합병설이 무성하게
나돌고있다.

체이스맨해튼과 케미컬밴킹이 합쳐 총자산 3천억달러(한화 2백25조원)
규모의 초대형은행이 될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미국은행들이 합병을 서두르는 것은 정부와 의회가 추진하고 있는 금융
산업개편에 대처하기 위해서이다.

미국정부는 지난해 은행들이 본거지이외의 지역에서 영업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조항을 완화한데 이어 97년에는 이 조항을 완전폐지할 예정이다.

의회에서는 증권업과 은행업의 겸업을 금지하는 글라스-스티걸법(1933년
제정)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미국에는 현재 1만여개의 은행이 있으나 대부분 규모가 작고 영업지역이
한정되어 있는 지방은행들이다.

자산규모상 세계 20위권에 포함된 은행은 하나도 없다.

따라서 지역별.영역별 제한이 폐지된뒤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수.합병을
통해 단점을 보완하고 규모를 키우는 일이 시급하다.

연방예금보험공사(FDIC)회장을 지낸 윌리엄 세이드먼은 "지금까지는 규제가
심해 은행들이(지역별.영역별로) 분할돼 있었지만 앞으로는 은행들이 인수.
합병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다"고 말한다.

그는 "지난 6~7년간 미국에서 5천여개의 은행이 사라졌다"면서 "2000년대초
까지는 현재 1만여개인 은행이 5천~6천개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방은행 형태로는 매출증대에 한계가 있다는 점도 합병을 추진하는 또
하나의 원인이다.

미국 은행들의 영업실적은 수년째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전통적인 금융중개업만으로는 성장을 기대할수 없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
됐다.

미국 은행들의 합병은 금융서비스업 개방화에 대비한다는 의미도 갖는다.

미국은 금융서비스업의 비교우위를 장담하면서 개도국들의 금융시장 개방을
강력히 추궁하고 있지만 은행들의 규모상으로는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다.

특히 미국 은행들로서는 자산규모상 세계 10위권을 석권하고 있는 일본
은행들을 경계하지 않을수 없다.

일본 은행들은 현재 부실채권에 짓눌려 있지만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나면 더 강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에는 현재 은행 합병을 추진하기에 적합한 여건이 조성돼
있다고 말한다.

CS퍼스트보스턴의 시장분석가 토머스 헨리는 "현재 미국 은행들이 4백억
달러 가량의 여유자금을 갖고 있다"면서 "지금과 같은 저물가 속의 안정
성장이 지속되면 2000년께에는 합병에 사용할수 있는 여유자금규모가 1천
5백억달러에 달할것"이라고 내다봤다.

합병하느냐 합병당하느냐.

미국 은행들은 지금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 있다.

< 김광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