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당국간회담은 당초 예상대로 실질적인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채
나흘동안 쌍방의 입장을 주고 받는것으로 시종하고 말았다.
연장 첫날인 18일에야 양측은 3차회담의 의제.시기.장소 등에 겨우
의견접근을 보기에 이르렀으며 이는 결국 2차회담의 모든 일정이
3차회담 준비로 소진된 인상이다.
다시 말해서 이번 제2차 북경 남북회담은 순전히 3차회담을 위한
예비회담으로 진행된 것과 다름없다고 볼수 있다.
남북이 처음 의도했던 의제자체가 달랐던 만큼 실질적인 성과를
기대하기란 애초부터 어려웠던 회담이긴 했다.
비록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었지만 이번 2차회담이 갖는 의미를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이번 회담결과 우리는 일단 남북당국자간 대화채널이 계속 작동될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질수 있게 되었다.
2차회담벽두 북한측은 우선 의제를 쌀 추가제공 문제에 국한하자는
입장으로 우리와 팽팽하게 맞섰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태도를 바꿔
나진.선봉지역의 무역관설치문제등 일부 개별 경협분야에서도 합의점을
찾으려는 전향적인 자세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남북양측이 회담일정을 연장하면서까지 논의를 계속한 것은 이같은
긍정적인 측면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우리정부의 대북 기본전략은 대화와 접촉,그리고 물자와 사람의 교류를
통해 북한내부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남북당국간 대화채널의 구축은 그래서 우리에겐 매우 중요한 일차적
관심사라고 해야 한다.
그동안 정경분리를 내세워 당국간 대화를 기피해온 북한이 이번
회담에서 다소나마 유연한 자세를 보인 것은 그래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현재 북한이 안고 있는 절박한 경제난 때문에 북한의 자세가
긍정적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크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2차 회담에서 보여준 과거와는 다른 북측의 전진적인 자세도
북한 내부의 열악한 경제사정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북한경제는 90년대들어 해마다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면서 에너지난
식량난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다급한 나머지 정권붕괴의 위험을 무릅쓰고 남한에 쌀을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지난 6월 김일성 사후 최초로 서울.평양 당국간 직접
접촉까지도 이루어진 것이다.
말하자면 남북 당국간 대화의 파이프라인은 북한의 필요에 의해
가설된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남북협상에서는 우리가 주도권을 갖는게 당연하다.
또 우리의 입장이 저들에게 확실히 전달될수 있도록 우리의 협상전략에
일관성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남북당국간 대화는 이제 막 첫걸음을 내디딘 단계이다.
모처럼 시작된 당국간 대화를 착실히 진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라도
장기적인 협상목표를 세우고 그에 따른 방법과 절차를 선정하는데
있어 우리 정부가 주도적인 입장을 견지할 것을 당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