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미대통령이 베트남과 국교정상화를 발표한지 불과 1주일후인
17일, 유럽연합(EU)은 베트남과 경제협력협정을 체결했다.

경협자금및 기술지원 투자확대등 다양한 "당근"을 제시, 그 대가로 시장
참여를 확대할수 있는 길을 트는데 성공했다.

또 대만 대통령의 방미건으로 미국과 중국간에 긴장감이 확산되던 이달초
EU는 중국과 경제및 정치적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하는 청사진
을 발표했다.

이에 힘입어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사는 미국 크라이슬러및 포드사를 제치고
중국에 합작 자동차공장을 세울수 있는 허가권을 얻어냈다.

역내 교역비중이 50%가 넘는등 회원국간 경제교류에 치중해온 EU가 지금
까지의 통상전략을 수정, 역외경제권에 대한 세확대 작업에 본격 나선
것이다.

특히 성장속도가 빠른 아시아시장에서 영향력을 넓히려는 EU의 노력은
필사적이다.

지난해 7월 처음으로 "아시아전략보고서"를 발표, 양측의 관심을 제고시킨
EU는 올들어 개별국가를 대상으로한 경협보고서를 잇따라 내놓고 입지를
다져나가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올 3월 EU집행위가 내놓은 대일 전략보고서는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
에서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고 전제, "EU는
이같은 상황변화에 대응, 세계평화및 안보, 그리고 무역분야에서 동반자적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방안으로 양측간 정기적인 정상회담개최 대일 투자여건개선 외에도
"일본이 경제적지위에 걸맞는 정치적 영향력을 가질수 있도록 유엔안보리
에서 상임이사국지위 획득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 일본측으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달 5일 발표한 대중국 보고서에서는 현지시장에 참여하는 대가로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진출을 지원할 뜻을 비췄다.

지난해말에는 중국 최초의 경영대학원 설립에 필요한 자금을 기부하는등
중국정부의 환심을 살수 있는 각종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한국과 통상협력 강화를 골자로하는 기본협력협정및 정치선언 체결을
서두르는 것이나 베트남과 경제협력협정을 맺은것도 이런 맥락의 일환이며
내년에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과 정상회담 개최도 추진중이다.

21세기 세계경제의 3분의1을 차지하게될 아시아시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쌍무관계를 강화, 그기반을 닦아 나가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명인 셈이다.

아시아권 못지않게 동구권에서 중남미, 그리고 지중해 연안에 이르기까지
세계주요 경제권과 협력관계를 체결하는 작업도 활발히 펼쳐지고 있다.

헝가리 폴란드등 구동구권을 회원국으로 가입시키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를위해 오는 99년까지 지원할 경협자금도 할당해 놓고 있다.

프랑스등의 지지를 받아 모로코 이집트등 지중해연안국도 경협대상국에
포함됐다.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등 발틱3국을 준회원국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으며 남미공동시장인 메르코수르(MERCOSUR)와 경제협력협정도 추진중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을 중심으로한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에 유럽을 포함하는
북대서양 자유무역지대(TAFTA)를 설립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EU가 이처럼 세계통상무대에서 그세를 확대하려는데는 시장다변화란 전략
이외에도 국제통상무대에서 미국에 빼앗긴 영향력을 되찾으려는 속셈도
다분히 깔려 있다.

냉전시대의 종식과 함께 소련이란 공동의 적이 무너진 지금 굳이 미국의
눈치를 보며 소극적인 통상정책을 펼칠 이유가 없다는 현실인식이 그만큼
확산된 결과인 것이다.

동시에 쌍무협상을 강요하는 미국에 대한 여타 국가들의 반감을 활용,
반사적 이익을 얻어내겠다는 적극적인 전략도 담겨 있는 듯하다.

미국과 일본의 자동차분쟁이 한창이던 지난달초 리언 브리튼 EU대외담당
집행위원이 일본으로 날아가 기술적 장벽등을 제거하고 돌아온 것이 이를
말해준다.

역내위주의 폐쇄적 통상정책에서 벗어나 역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EU.

노련한 통상외교술을 앞세워 적극적인 시장개척에 나선 EU의 행보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 브뤼셀=김영규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