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리아만큼 오랜 옛날부터 세계 곳곳에 널리 퍼져 있는 유행성 질병도
없다.

아프리카에서 기원된 질병으로 알려져 있는데도 고대로부터 말라리아의
상세한 문헌기록들이 많이 남겨져 있기때문이다.

말라리아는 고대소아시아지방의 바빌로니아 팔레스타인 히브리등의
설화에도 등장한다.

고대그리스에서도 엠페도클레스학파가 시칠리아섬에서 말라리아를
추방했다는 기록이 있고 히포크라테스의 저작에는 말라리아를 언급한
대목이 곳곳에 나온다.

고대로마나 중세때의 문헌에도 말라리아의 유행기록이 적지않게
남겨져 있다.

15세기이후 항해의 발달이 말라리아의 광범위한 확산을 가져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에서도 말라리아는 아주 오래전부터 유행한 질병이었다.

말라리아의 최초기록은 "고려사" 의종6년(1152)조에 나타나고 가장
오래된 의학서로 고려 고종연간(1214~59)에 간행된 "향약구급방"에도
그 기록이 나온다.

조선시대의 의학서인 "향약집성방"과 "동의보감"에도 말라리아가
상세히 언급되어 있고 세종2년(1420) 5월에 대비가 말라리아에 걸려
죽었다는 다른 기록도 있다.

그런 기록들로 미루어 볼때 한반도에서도 말라리아가 줄곧 널리
유행해왔음을 알수 있다.

19세기에 들어와 유럽에서는 말라리아가 사라지는 추세를 보였으나
그밖의 다른 지역에서는 오히려 창궐했다.

러시아혁명 뒤인 1923년에는 소련에서 1,800여만명이 말라리아에
걸려 어떤 지역에서는 환자의 40%가 사망한 곳도 있었다.

인도에서는 2차대전전에 매년 1억명의 환자가 발생하여 그중 300만명
가량이 죽은데 이어 1947년에도 7,500만명의 환자중에 1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90년대 들어서도 말라리아가 케냐 브라질 태국 캄보디아등지에 크게
번져 매년 2억7,000만명의 환자가 생겼고 92년에는 200여만명이 죽었다.

한국은 1950년께까지 성인의 40%가량이 말라리아병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뒤 점차 감소되어 근년에는 아프리카지역 취업자나 여행자들을
제외하면 말라리아환자를 거의 찾아볼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지난해에 8명의 토착말라리아 감염자가 발생한데 이어 올해에도
서울과 과천에서 환자가 생겨 방역비상령이 내려졌다.

다른 유행성 질병과는 달리 특효약이나 백신이 없는데다 치사율이 높은
무서운 질병이라는 점에서 병원체인 모기를 박멸하는 조기방역의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