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호 <한국산업표준원장>

최근 정부는 만성적인 대일본 무역적자의 원인을 자본재 수입의 대일
의존도에서 찾고 있다.

60~70년대 경제개발 초기단계에서의 산업표준화 연구는 많은 투자와
시간이 걸리는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따라서 기초연구도 없이 일본산업표준(JIS)을 모델로 하여 한국산업표준
(KS)을 제정하는 지름길을 택했다.

예산과 시간을 절약하여 산업의 근간인 표준화를 이룬 대신에 "자본재산업
의 일본예속화"라는 부작용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일본표준을 수용하여 일본기계 부품으로 생산라인을 통일하는 것이
경제적이었지만 동시에 우리의 산업경쟁력에 한계를 드러내게 된
것이다.

또한 자유무역주의를 표방한 WTO시대에서 선진국들이 합법적인 장벽으로
이용할수 있는 수단이 바로 국제표준(IS: International Standards ) 또는
지역표준 등이라는 사실에도 주목해야한다.

이러한 국내외적인 변화에 대처하기 위하여 다음의 두가지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첫째는 산업표준화 자립을 위한 연구개발능력의 강화다.

표준화는 보이지 않는 산업인프라로서 균형적인 산업발전의 기반이다.

선진국의 산업표준동향을 조사.분석.비교 검토하여 장기적인 산업표준
전략을 수립하는 한편 신생산업을 위한 선행적 표준화과제를 연구개발하며
우리나라 고유의 기후 언어 문화및 체형에 맞는 국제표준 수용체계를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

오늘날 하나의 표준이 정해지면 타산업과도 영향을 주고 받기 때문에
각 산업별 표준화연구는 타산업에 주는 영향등을 고려한 것이어야 하며
개별적이어서는 안된다.

바로 정보산업 환경산업등이 이러한 예이다.

이러한 것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체계적 표준화 연구능력의 강화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 문제의식을 가진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와 산업계의 협력등
공동의 노력이 있어야 하겠다.

둘째는 국제표준화 활동에의 적극적인 참여이다.

국제표준은 국제표준기준(ISO)산하 1,035개의 각급 표준위원회의
논의와 투표에 의해서 결정된다.

참여는 자발적인 것으로 직접 참여와 문서투표의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불참하더라도 제재는 없지만 우리 산업계에 불리한 표준이 결정된다면
손해를 감수할수 밖에 없다.

우리의 주장을 설득시켜 유리한 국제표준을 정하는 일은 장기간의
참여와 꾸준한 노력의 결과로 얻어질수 있는 것이다.

"보이지 않은 전쟁터다"라는 참석경험자들의 소감에서 경쟁의 열기를
느낄수 있듯이 발언권의 강화와 유리한 국제표준의 결정은 산업경쟁력
강화의 중요 요소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과 투자없이 맹목적으로 국제표준을 따르는 무임승차는
이제 지양되어야 한다.

국제표준화 경쟁사례를 보면 VTR 표준의 VHS와 BETA방식에서 구미기업이
연합한 VHS가 승리하였으며 차세대 영상매체로 각광받을 DVD( Digital
Video Disk )표준에서 슈퍼덴시티와 하이덴시티 표준및 고선명 TV에서의
디지털과 아날로그 표준 등의 결정을 놓고 우리기업도 가세하여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밖에도 수많은 첨단상품들이 국제표준을 놓고 경쟁중에 있으며
어느 쪽이 승리하느냐에 따라 천문학적인 경제적 이익의 향배도
달려있다.

용어표준도 ISO의 문헌정보위원회에서 자발적인 참여로 정해지고
있는데 우리가 소홀하게 지나칠수 없는 부분이다.

일본과의 경쟁에서 김치를 기무치로 표기해야 한다든가 한글을 조센
문자로 표기해야 한다면 우리는 후손에게 어떻게 변명할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수 없다.

이러한 활동을 소홀히 한 결과 동해 대신에 일본해로 표기해야 하는
뼈아픈 실수를 다시는 하지 말아야 하겠다.

이러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산업표준화 문제들이 더이상 외면
되어서는 현재의 눈부신 경제성장이 튼튼한 기반위에 섰다고 할수 없을
것이며,민족의 자긍심도 지키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