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 남구 감만동 부산항내에 자리잡은 연합철강으로 향하는 도로.

길 양옆에 손질이 잘된 정원수와 큰 돌에 새겨진 "연합철강" 이정표가
눈에 곧바로 들어온다.

이회사 정문을 통과하면 가로 70m 세로 5m의 화려한 십장생도가 방문자
를 반긴다.

이 그림은 동아대 송보준교수와 4명의 학생이 한달간 그린 것이다.

노사가 한데 어울려 영원히 뻗어 나가겠다는 기상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 위로 빨간 장미가 시샘하듯 자태를 뽑내고 있다.

공장 한가운데 폐수를 처리한 물로 만든 연못에 떠다니는 물고기들이
한가롭다.

노조사무실 바로앞에 고향의 향수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초가휴게실이
조촐하게 자리잡고 있다.

토담벽 볏단담장이 시골 풍경 그대로다.

텃밭에는 우리밀이 자라고 있다.

공장 곳곳은 수많은 나무들로 그야말로 녹색지대를 이루고 있다.

철과 나무. 쇳물을 다루는 근로자와 이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회사가 마치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5월의 푸르름속에 노사양측은 마침내 무교섭 임협타결을 일궈냈다.

3백20일간 파업이란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진 연합철강 노조설립 이후
처음이다.

대립과 갈등의 연장선을 걸었던 이 회사 노사가 이처럼 1백80도로 변한
것은 노사가 서로 양보하고 진솔한 대화를 나눠가면서 "얼음장"을 깨나갔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난91년 3월 공장장으로 부임한 박국정상무는 "관리자와 근로자가 만나도
말을 안하고 피해갈 정도의 삭막한 현장 분위기만큼 노사관계도 얼어 있었다"
고 당시를 회상했다.

관리자와 현장근로자는 생산에 매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괜히 트집을
잡아 헐뜯는데 급급했다.

노사간 대화는 단절된 상태로 갈등의 매듭이 전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박상무는 우선 불신의 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그는 공장순시 대신에 수박과 박카스를 들고 공장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녔다.

과차장들도 자신의 담당부서 현장을 방문했다.

여기서 노사가 가지고 있던 오해의 첫 단추가 풀리기 시작했다.

대화의 물꼬도 트였다.

회사는 근로자의 불편을 받아들여 소형냉장고를 현장에 비치했다.

생수통을 마련해 근로자들이 쉬는 시간을 이용해 안심하고 맑은 물을
마실수 있도록 했다.

물값으로만 년 2억원이 지급되고 있다.

그야말로 일할 분위기를 만들어 준 것이다.

환경개선과 더불어 교육을 통한 의식개혁과 복지문제 해결로 "노사 한가족
만들기"에 들어갔다.

전사원과 부인을 경주의 호텔로 초청해 회사의 현재와 미래를 설명하며
한마음을 다졌다.

이를 계기로 서로 양보하는 마음이 생기게 됐음은 물론이다.

40억원을 투자해 정문옆에 복지회관도 설립할 계획이다.

최고 경영자인 이철우사장의 눈물겨운 노력도 뒤따랐다.

평상시 노조와 대화를 꺼리며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던 이사장이 노조
확대회의 간부석상에 홀로 참석해 노조를 놀라게 했다.

이 자리에서 이사장은 회사의 미래를 설명하고 노조의 협조를 구해 과거
와는 전혀 다른 솔직한 자세를 보였다.

대부분의 노조간부들이 여기서 사장의 참뜻을 알게됐다.

노조도 한발 뒤로 물러서며 화답을 보냈다.

노조는 지난해 노사화합 결의대회를 계기로 임금인상을 회사에 일임했고
올해는 무교섭 합의라는 새 장을 열었다.

지난3월에는 철강업계 최초로 노사안정을 통한 기업혁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15년간 미뤄온 공정별 인원감축이 노조의 기득권 포기로 가능해질
정도로 노조는 변화의 길을 걷고 있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들이 오늘의 생산적인 노사협력 관계를 이룩하게
된 것이다.

강진호노조위원장은 "노조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해야 한다"며
"만족스럽지는 못하나 스스로의 실리도 찾고 국가시책에 동참하기 위해
노사화합의 결실을 맺었다"고 강조한다.

강위원장은 "대주주간의 갈등으로 과감한 투자에 어려움이 따르고 있어
노사화합의 걸림돌이 되고 있으나 이를 녹일 수 있는 노사관계 정립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갈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이회사 노사는 최근 이러한 노사화합의 안정속에 지역경제와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 지속적인 설비투자와 합리화를 추진해 오는 97년 매출액
1조2천억원의 냉연표면처리업계의 선도적 기업으로 부상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 부산=김문권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