녕국부 저 안쪽에서는 곡하는 소리가 마치 산을 흔들기라도 할듯이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그 곡소리를 들으니 보옥은 아까 진가경의 부음을 듣는 순간 피를
한줌 토하며 쓰러진 것처럼 또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어찔 현기증이
일었다.

이러다가는 진가경과 같은 날 저 세상으로 가지하는 생각이 들어
보옥은 정신을 가다듬으며 수레에서 내려 곧장 진가경의 시신이
놓인 방으로 갔다.

보옥이 그 방으로 들어가자 곡소리는 더욱 커졌다.

보옥의 두눈에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보옥은 한차례 슬피 통곡을 하고나서 진가경의 시어머니 되는 우씨방
으로 건너가 보았다.

우씨는 마침 지병인 위병이 심하게 도져서 자리에 누워 있었다.

보옥은 우씨방을 나와 진가경의 시아버지 되는 가진을 찾아뵈었다.

그 무렵에는 영국부와 녕국부의 일가친척들이 거의 다 문상을 와서
영전에서 곡을 한후 가진이 있는 방에 모여 있었다.

가대유 가대수 가칙 가효 가돈 가사 가정 가종 가창 가릉 가운 가근
가평 가조 가분 가방 가람 가인 가지 등등이 침통한 표정들을 하고
가진을 중심으로 둘러앉아 있었다.

가진이 눈물을 흘리며 가대유를 비롯한 가문어른들에게 하소연을
하였다.

"집안 사람들과 가깝고 먼 친지들이 모두 우리며느리가 열 아들
부럽지 않다고들 했는데 이렇게 훌쩍 저 세상으로 갔으니 이제 장손
집안에 후사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그러면서 또 통곡을 하였다.

가문 어르들이 가진을 위로하며 말했다.

"이미 가버린 사람, 그렇게 통곡만 한다고 살아돌아올리도 없고 지금은
장례를 위해 다같이 의논하는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오"

"장례요? 내 재산을 다 털어서라도 성대하게 치러야지요"

가진이 다짐을 하듯이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가진이 왜 그렇게 며느리를 극진히 생각하고 그녀의 죽음을 저리도
슬퍼하는지 그 이유를 아는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그것은 며느리를 강간하고 나중에는 간통으로 진행된 그 모든 일에
대하여 속으로 죄의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며느리가 젊은 나이에 깊은 병이 들어 일찍 세상을 떠난 것도
따지고 보면 가진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할수 있었다.

가진은 속죄하는 마음으로 자기가 직접 나서서 장례일을 진두지휘해
나갔다.

우선 가진은 가경 가침 가린 가장 네 사람에게 문상 오는 손님들을
접대하는 일을 맡겼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