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6일 오전 8시15분. 히로시마 사람들은 맑은 하늘을 가로지르는
엄청난 섬광을 보았다.

눈깜짝할 사이에 작열하는 빛과 함께 죽음의 재가 휘말려 올라가고
거대한 버섯구름이 치솟았다.

버섯모양의 뿌리부분은 보라빛이 섞인 회색으로 지름이 약 4~8km나
됐다.

건물은 무너지고 도시전체는 불바다로 변했다.

사람들은 피부가 거의 벗겨지도록 심한 화상을 입은채 고통으로
울부짖었다.

26만여명이 죽고 16만여명이 부상한 당시의 참상은 인류종말의 예언이
실현되는구나 하는 착각까지 들게 했다는 것이 후일 생존자들의 증언이다.

원폭제조 당시의 기록을 보면 원폭은 독일을 제압하기 위해 만든
것이지 목표가 일본은 아니었다.

그 이유야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원자력의 위력이 대량 살상무기인 원폭의
형태로 처음 인류에게 선보인 장소가 히로시마였다.

일본군의 점령을 받았던 동남아 각국의 사람들은 대부분 "원폭투하는
일본에 대한 천벌"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제의 화평파였던 요나미 미스미사 해군상은 "원폭투하는
하늘의 도움이었다"고 실토했다고 한다.

전쟁을 끝낼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의미다.

"천벌"이든 "천조"든 이제 다시 그런 의미를 따져 무엇하겠는가.

징용이나 징병으로 끌려갔다가 피폭당해 50년동안 원자병으로 고통속에서
살아온 한국인 원폭피해자에게는 그런 의미규정이 쓰잘데 없는 일로 보일
것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한국인 원폭피해자는 모두 7만여명이고 이중
4만여명은 숨지고 3만여명이 일본과 한국에 흩어져 살고 있다고 한다.

국내에는 지금 2세를 포함해 8,78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들중 상당수는 지금도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며 일본이나 한국정부
어느 쪽에서도 별 지원을 받지 못한채 주위사람들의 냉대를 받으며
가난속에 살고 있다.

이들에 대한 사회의 깊은 관심과 배려가 요망된다.

안전성이 확보되고 평화적으로 이용되기만 하면 원자력만큼 유용한
것도 없다.

아마 신은 원자력의 악용을 경고하기 위해 히로시마에서 제일 먼저
그 위력을 보여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도 강대국들은 틈만 나면 핵실험을 하고 있으니 언제까지
핵의 그림자속에서 떨며 살아가야 할지 두렵다.

레이몽 아롱의 말처럼 우리는 여전히 강력한 무기와 나약한 인간으로
구성된 세계속에서 살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