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우만법무부장관의 "7일밤 지시"에 따라 검찰이 "전직 대통령 4천억
가.차명계좌 보유설"에 대한 본격 수사에 착수함에 따라 검찰이 어디까지
수사의 칼을 댈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안장관의 지시가 있기 전까지만해도 검찰은 "조사계획이 없다"며 조사
착수설을 적극 부인했으나 이날 지시를 기점으로 "일단 조사"로 급선회,
수사수위가 주목되고 있다.

검찰의 이번 수사는 해성명조사에 그치느냐 아니면 5,6공의 비자금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로 확대되느냐에 따라 정계와 재계에 태풍을 몰고 올 수 도
있다.

검찰은 바로 이 점때문에 7일 오후까지도 "정치자금은 수사대상으로 삼지
않는게 관례"라며 조사의사가 없음을 거듭 밝혔다.

이같은 검찰의 자세는 8일에도 이어졌다.

이원성 대검중수부장은 이날 오전 기자브리핑에서 "이 사건은 정치적 성격
을 띠는 사건인 만큼 결국은 정치적으로 해결되길 바랬다"고 언급, 마지
못해 조사에 착수했음을 내비쳤다.

이중수부장은 이어 이 사건이 검찰이 조사하기에는 부적당한 사건이라는
이유로 우선 그동안 정치자금을 손냈던 적이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정치자금은 정치권에서 해결할 성질의 문제라는것이 그의 설명이다.

정치자금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면 여야등 정치권 뿐아니라 재계까지도
모두가 발칵 뒤집힐 만한 "단서"가 발견될 것이고 이는 곧 혼란정국으로
이어진다는 얘기이다.

때문에 검찰은 조사는 하되 단순 해명성조사에 그친다는 입장을 공공연하게
비치고 있다.

8일 브리핑에서 검찰의 한 관계자는 "검찰은 진상을 조사하는 기관이
아니다"며 불만을 토로한 뒤 "그러나 이번 조사의 성격은 이 사건이 미친
파장을 감안, 진상조사차원의 내사"라고 규정했다.

결국 해명성조사로 조기에끝날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검찰이 이같은 소극적인 자세는 조사후 나올 결과에 대한 비난여론을 크게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조사결과가 시원치 않을 경우 "축소수사" "정치자금은 성역인가"라는 등의
비난이 검찰에 쏟아질 것이 뻔하다는게 검찰의 예단이다.

문제는 정치권에서 빚어졌는데 책임은 검찰이 떠안아야 하는가라고 검찰은
반문하고 있다.

검찰은 진상조사차원을 넘어 정치자금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될
경우 경제계에도 막대한 영향이 미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자칫 이번 수사는 은행에 묶여 있는 10조 5천억원의 가.차명계좌에 충격을
주게 된다고 검찰은 밝히고 있다.

이는 곧 자금흐름을 뒤흔들어 금융계를 긴장시키게 되고 재계 전반에도
메가톤급 파문을 가져올 것이라고 검찰은 설명하고 있다.

검찰은 따라서 서전장관을 조속히 불러 발언내용의 진위를 파악하는 한편
서전장관을 통해 4천억원 변칙처리 의사를 타진한 "문제의 인물"이 확인
되는대로 곧바로 소환, 사건을 조기에 매듭짓는다는 방침이다.

"시간 끌 이유가 없다. 소환대상자가 생기는 대로 바로 바로 소환해 빨리
빨리 처리하겠다"는 이중수부장의 발언도 이와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검찰의 해명성조사라는 거듭된 방침표명에도 불구, 예상외로 정치
자금중 일부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조사가 진행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는 청와대의 입장과 정치권의 기류에 따라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뿐만아니라 이미 여론은 전직대통령의 4천억원의 가.차명계좌설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어 검찰이 섣불리 해명성조사차원에 그치지 못하도록
등을 떠밀고 있다.

결국 이번 사건은 전대미문의 거액의 정치자금과 관련된 만큼 검찰의 의지
보다는 청와대의 의지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고 보는게 정설이다.

검찰은 청와대의 본격수사 지시를 은근히 기다리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이럴 경우 여.야 모두가 성역은 될수 없을 듯싶다.

< 윤성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