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물자를 낭비하는 것은 곧잘 탓하지만 감정의 낭비에 대해서는
무감각하다.

화를 잘내는 것, 사람끼리의 불필요한 실랑이, 자신과 아무 관계 없는 일에
참겨하는 것, 되지 않는 일에 생떼쓰기, 접객업소에서의 불친절...

이런 모든 사람과 사람끼리의 부딪침에서 일어나는 마찰과 감정의 소비.

타이베이시내서 필자가 목격한 장면.

승용차끼리 접촉사고가 났다.

두 운전자가 내리더니 싱글거리며 얘기를 나눈다.

한사람이 지갑을 꺼내 상대에게 돈을 건네준다.

그사이 2.3분정도, 서로 손을 흔들고 헤어졌다.

잘잘못이 분명했기에 그런 식으로 해결이 됐겠지만 결국은 물적 심적소비를
회피하자는 묵계가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순경을 부르고,파출소에 가 진술서를 쓰고 어쩌고 하는 "낭비"를 피차
원치 않았던 것이다.

우리나라 경우 같았으면 삿대질에 게거품부러 시작됐을 것이다.

시비곡직을 끝내 가리려는 정신만은 갸륵하다 할 것인가.

친절이란 것도 실상은 사람끼리의 부딪침을 매끄럽게 하려는 효율성의
지혜라 할수 있다.

상대방이 좋아서 친절한게 아닌 것이다.

호불호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을 구분할 필요가 없는 것이 또 그러지
말아야 하는 것이 친절이다.

그리하여 피차가 마음이 편해지고 까닭없는 불만과 노여움이란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아도 된다.

질서의식이란 것도 "아름다운 것"이란 표어가 기억나지만 실상은 다상공향
에서 서로 서로 불편하지 않게 지내기 위한 합의 또는 계약이라 할수 있다.

필자는 좀 짓궂게 생각한다.

한국사람이 "에너지"가 넘쳐 걸핏하면 옥신각신 티격태격 하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아니면 한국사람이 아직도 순진하고 "인간적"이어서
에너지의 타산을 마다하고 벌거숭이 감정을 노출시키는 셈인가 하고.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가 다상공간의 겸험이 부족하여 계속 촌사람의식에
머물러 있는 탓인가하고.

좀더 익쌀맞게 군다면 그같은 심리적 에너지의 낭비가 사회의 안정과
균형을 유지하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나 할까.

요즘의 정치판 학사판등에서도 느껴지는 필자의 "감정" 낭비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