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을 뒤흔들었던 서석재전총무처장관의 "전직 대통령 4천억 가.차명계좌
보유발언"사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대의 해프닝으로 끝나가고 있다.

이 사건은 한때 수사방향이 자칫하면 정치권 전반의 비자금으로까지 확대될
지 모른다는 예측이 나와 정.재계를 바짝 긴장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9일밤 대검 중수부가 "전직 대통령과는 무관하지만 "1천억원대
의 카지노 비자금설"과는 관계가 있을수도 있다"고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자
초점은 "카지노"쪽으로 급선회했다.

10일 검찰은 소문의 진원지로 알려진 수원 그린피아 호텔사장 이창수씨(43.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명의로 된 "1천억 차명계좌"가 예치돼있다는 시티은
행 강남지점과 본점 전산부등에 압수수색을 실시했으나 결과는 예상대로 였
다.

이 은행에는 "이창수"라는 이름으로 된 계좌가 단 한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
던 것으로 밝혀졌다.

뿐만아니라 "검은돈의 은밀한 처리부탁"이 서전장관에게 오기까지 거쳤다는
10여 단계에 대한 검찰의 조사결과에서도 이 사건이 해프닝이라는 사실이 잘
나타나고 있다.

검찰이 밝힌 경위도는 이렇다.

지난해 7월초 삼일로 부근의 한 당구장에서 그린피아호텔 사장 이씨와 브로
커로 알려진 이재도씨(35.수배중 전제일은행 압구정도지점대리) 그리고 전문
브로커 박영철씨(43.무직)와 박씨의 고향친구인 김종환씨(42.회사원)등 4명
이 접선을 한다.

"그린피아"사장 이씨는 이 자리에서 박씨에게 돈의 액수와 국고 헌납여부등
은 일체 언급하지 않은 채 자신의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적힌 메모지와 함께
"비실명화자금의 변칙해결"을 부탁한다.

검찰에 따르면 박씨는 이날 이씨에게 "잘 해결해주면 사례비로 두툭히 줘야
하지 않겠느나"고 말하자 이씨는 아무런 대꾸도 안했다는 것이다.

박씨는 그후 삼일로 부근의 한 다방에서 양춘화씨(51.무직)로부터 이씨가
도박업계의 대부 정덕진씨의 경리부장을 지냈으며 1천억원대의 예금이 이씨
의 명의로 된 차명계좌에 들어있다는 말을 듣는다.

양씨의 말에 고무된 박씨는 같은해 8월 친구선배인 김서화씨(51.(주)장상기
공대표)씨에게 "해결방법을 알아봐달라"고 부탁하고 김씨는 다시 친구소개로
알게된 양재호씨(49.(주)미래로이사)에게 이 말을 전한다.

이같은 경로로 양씨는 같은해 12월 처사촌 동서간인 이종옥씨(45.부일통상
대표)에게, 이씨는 올 5월 사업관계로 아는 이삼준씨(54.이태원 국제상가연
합회사무장)에게 부탁한다.

이때까지는 돈의 절반을 국고에 헌납한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이삼준씨가 동서간인 이우채씨(55.한약유통상)에게 "릴레이"하면서 "절반
국고헌납"을 첨가한다.

이씨는 검찰 진술에서 "자금 출처조사를 면하기 위해서는 돈의 절반가량을
국가에 바쳐야 할거다"라는 풍문에 따라 동서 이씨에게 말을 전할 때 이를
덧붙였다는 것이다.

한약유통상 이씨는 서울시 배드민턴 연합회 일로 알게 된 송석린씨(62.(주)
GMG회장. 서울시 배드민턴 연합회장)에게 이를 부탁하고 송씨는 이를 김일창
씨(55.우이동 "고향산천"업주)에게 전한다.

송씨가 김씨를 택한 이유는 김씨가 서전장관과 평소 친분이 두텁다는 사실
을 감안한 것이다.

그리고 김씨는 지난 7월초 총무처장관실에서 서전장관에게 부탁하면서 "카
지노관련자금"이라는 말을 꺼내기가 곤란해 송씨와 전경환씨(배드민턴 연합
회고문)의 친분 관계에 착안, 서전장관에게는 "전경환씨와 관련이 있는 돈"
이라고 말을 바꿨다.

또 "당구장"모임이후 김일창씨까지 거슬러 올라오는 과정에서 "카지노"와 "
빠찡꼬", "정덕진"과 "전낙원"이라는 이름들이 엇갈려 전해진 것으로 드러났
다.

이렇게 볼때 이 사건은 결국 일개 장관이 "한탕주의자"의 농간에 놀아나 옷
까지 벗고마는 해프닝이 될 공산이 커지게 됐다.

그러나 그렇다고 국민들의 의혹은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언제 무슨 일을 계기로 또 이같은파문이 일어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 윤성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