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균 <대은경제연 산업연구실장>

최근에 현대와 삼성등 국내 최고의 전자회사들이 반도체부문에서
1조원대의 해외투자를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현대전자는 최근 미국의 현지법인을 통해 총 13억달러를 투입,오리건주에
8인치 웨이퍼를 월 3만장씩 가공하여 64메가D램을 생산할수 있는 메모리
공장을 건설키로 했으며,삼성전자도 총 15억달러를 들여 미국 텍사스주에
8인치 웨이퍼를 월 3만장 이상 가공할수 있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공장을
설립키로 한 바 있다.

이 2건의 투자금액 28억달러는 지난해 대중투자를 중심으로 급증한
우리나라의 연간 해외투자규모 23억달러(1,467건)를 훨씬 웃도는
금액이다.

해외직접투자의 경우 무역의 확대,새로운 시장개척,저임금과 충분한
노동력의 활용등 여러가지 이점을 갖고 있어 그것이 늘어나는 것만
가지고 문제삼을 수는 없다.

특히 이 두회사는 종전과 같이 자원개발이나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투자가 아니라,한 차원 높은 글로벌 경영을 실현하기 위해서라고 그
투자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의 해외생산을 위한 대미투자는 좀더 세심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반도체의 경우 우리가 미일에 비해 비교우위에 있으므로 해외투자를
통하여 우리의 중요기술이 빠져나갈수도 있고,부메랑 현상에 의거
국내산업이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다.

그동안 반도체부문에서 해외생산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삼성과 현대는 물론 아남산업과 한국전자까지 해외생산거점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아남과 한국전자는 동남아의 싼 인건비를 겨냥하여 진출한
것이고,삼성과 현대의 지금까지의 투자도 비메모리등 취약한 분야에
대한 기술획득을 겨냥한 투자였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추진되고 있는 현대나 삼성의 메모리 일관생산공장
건설을 위한 대미투자는 기업의 이해관계와 정부의 산업정책방향이 상호
조율되는 선에서 재고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기업의 입장에서는 국경없는 무한경쟁시대에 해외투자 심의를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이 시대역행적이고 행정규제 완화조치에도
정면 배치된다고 반발하겠지만 이는 그렇게 간단히 생각할 문제는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적어도 그것이 한 기업의 이해관계를 넘어,장기적인 관점에서 국가
전체의 산업정책방향이나 국내산업의 경쟁력 저하 문제와 깊이 관련될
때는 다소 무리가 따르더라도 기업의 투자결정이 조정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첨단산업조차 해외로 나가버리면 국내에 산업공동화가 빨리
진행되지 않겠느냐는 정부의 우려에 대하여 기업에서는 산업공동화
문제는 종래 제조업이 산업의 주종을 이루던 산업사회에서나 타당성이
있는 논리이며,경제활동에 국경이 없는 지금은 어울리지 않는 논리라고
통박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공동화라고 하는 것은 해외투자의 급증이나 경제의
서비스화에 의해 발생하는 현상으로서 최근들어 일본이나 미국이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문제중의 하나이다.

특히 이것은 미국처럼 산업이 고도화 성숙화되는 과정에서 제조업의
비중이 저하되고 산업구조가 서비스산업 위주로 전환되어 발생하는
현상이다.

따라서 산업공동화는 종래 산업사회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지식.정보사회에서 더욱 심각하게 부각될 문제인 것이다"

해외투자에 따른 산업공동화의 문제는 그 투자의 스타일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일반적으로 이들은 어떤 형태로든 상관관계가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대부분의 산업공동화는 무분별한 직접투자의 확대에 그 원인이 있다.

해외직접투자의 증가는 현지법인을 통한 제3국으로의 수출증가를 유도,
자국의 수출을 감소시키게 되고 그만큼 국내 설비투자도 줄어들게
함으로써 산업공동화를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번에 논란이 되고 있는 현대나 삼성의 대미투자는 비교우위산업을
중심으로 한 무역축소형 투자이기 때문에,무역장벽의 해소나 시장확대에는
다소 도움이 될 수 있으나,현지국의 생산성 향상으로 비교생산비차가
축소되어 무역이익이 적어질 뿐만아니라 수출산업으로부터의 직접투자에
의한 진출이므로 현지생산 만큼의 수출과 고용의 감소를 가져올 수도
있다.

따라서 이번의 반도체 부문 대미투자는 장기적인 측면에서 국내
첨단산업에 미칠 영향이 클 뿐만 아니라 기업의 투자 메리트 또한
확실치 않으므로 신중히 재고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아울러 각 기업은 너무 단기적인 이익에만 매달려 국내 첨단산업
전체의 장기비전을 소홀히 한점은 없었는가도 반성해 볼일이다.

"그리고 정부는 일반적인 경제행정규제에 대해서는 기업의 입장에
서서 과감히 완화하여 기업경영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하되 일부
비교우위산업의 해외투자문제와 같이 국내산업의 경쟁력및 산업구조
조정과 관계되는 부분은 치밀한 분석을 통하여 정확한 잣대를 제시하는
한편 보다 미래지향적이고 확고한 산업정책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 기업들이 산업공동화를 예방하면서 세계화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또 이를 정부가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해외투자의
선발국인 미국이나 일본과 차별화할수 있는 투자정책이 마련되어야한다.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본국과 현지국 정부및 기업의 이익이 서로
조율되는 그룹간 이해조정형 투자정책이 우리가 지향해야할 목표이나
단기적으로는 기업이익과 본국 정부의 이익이 조화를 이루는 일본형
모델을 참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산업공동화를 보다 효과적으로 극복하려면 투자정책방향을 산업
구조조정정책과 연계하여 설정하고 생산기지의 해외이전도 업종전체의
이전이 아니라 동일 업종내에서도 노동집약공정은 해외로 이전하되
기술집약적 고부가공정은 국내에 잔류시키는 형태의 산업내 국제분업성
투자진출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의 산업여건을 감안할때 해외투자는 앞으로도 비교열위업종의
기술습득목적이나 국제공정분업 측면에서 추진되어야 하며 비교우위업종의
해외진출은 가급적 억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