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반드시 이름을 바르게 한 다음에 이루어진다"는 옛말이 있다.

사람의 이름이나 사회집단의 명칭이 좋아야 뜻하는 바를 이룰수 있다는
이름의 미신이다.

다르게 말하면 형식이 좋아야 알찬 내용이 담겨질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이름의 미신은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의 생활과 의식속에 깊게
자리해 왔다.

서양인들도 오랜 옛날부터 그런 점에선 예외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고대 로마인들은 이름이 잘 지어진 사람부터 전쟁터에 내보내는 관습이
있었다.

시저 역시 이름을 보고 부하를 발탁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아무런 전공도 없는 스키피오라는 범부를 하루아침에 지휘관의 자리에
앉힌 것도 그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곧 가시적인 형식이 불가지의 내용을 결정해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믿음이 표출된 한 형태다.

그런 점에서 아무리 과학적인 사고의 틀이 정착되어 있는 세계라 하더라도
이름의 미신을 떨쳐버릴수는 없게 된다.

다음 학년도부터 일제가 남겨준 국민학교라는 명칭을 초등학교로 고치기로
한 것도 그러한 의식의 틀에서 생각해 볼수도 있을것 같다.

1895년 한국에 최초로 근대적인 초등교육기관이 생겨났을 때의 명칭은
소학교였다.

그것이 1906년에는 보통학교로 바뀌었다.

일제는 그것을 1938년에 심상소학교라는 명칭으로 고쳐 놓았다.

일제는 태평양전쟁을 위한 전시체제를 갖춰나가던 1941년 어느 나라의
교육기관 명칭에도 없는 국민학교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그해 2월28일 일왕 히로히토의 칙령 148호 "국민학교령"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황국의 도에 따라 초등보통교육을 베풀어 국민의 기초적 연성을 위한다"
는 것이 목적이었다.

국민학교라는 명칭에는 그처럼 일제의 대륙침략을 위한 인력기반을
마련하려는 "황국신민화교육"시책이 깃들여 있음을 쉽게 간파할수 있다.

이러한 오욕의 역사를 지닌 국민학교라는 명칭이 광복50돌이 되기까지
버젓이 쓰여왔다.

일본조차도 1947년에 군국주의 청산 차원에서 그 명칭을 소학교로
바꾸었는데도 말이다.

작명동기의 불순과 일제 잔재라는 점은 물론 초.중.고 명칭 체계면에서도
그 개칭이 이미 이루어졌어야 마땅했다.

만시지탄이긴 하지만 광복이후 줄곧 논란이 거듭되어 오던 국민학교개칭이
매듭을 짓게 되었다.

이름의 미신이 자리해 있는 민족정서면에서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