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50년] 기업 변천사 : 우리는 "해방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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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의 감격과 술렁임도 가라앉기 시작한 45년11월1일.
25세의 한 젊은이가 인천 해안동2가9에 트럭 1대로 운송회사를 차렸다.
회사명은 한진상사.대한항공등 20여개의 계열회사를 거느리고 육해공을
장악하고 있는 한진그룹의 모태가 된 것이 바로 이회사다.
이른바 해방동이기업이다.
이 회사를 차린 조중훈씨는 해방전 휘문고보를 다니다 일본으로 건너가
후지나가다조선소에서 일하면서 수송선인 헤이안마루호를 타고 중국과
홍콩을 넘나들며 바깥세상을 살폈다.
그는 42년 귀국하기가 무섭게 서울 효제동에 공장을 차렸으나 일제의
기업정비령으로 곧 문을 닫고 말았다.
해방을 맞은 그는 화물선이 인천으로 실어오는 각종 화물을 내려 서울로
실어나르는 운수사업에 손대기로 마음을 굳히고 차린 것이 한진상사이다.
똑같은 11월1일 또다른 25세의 청년이 서울 회현동 작은 목조건물에
대한오브세트잉크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이 회사가 해방후 한국인의 손에 의해 설립된 최초의 잉크회사.
이날 간판을 내건 한정대씨는 최초의 국산잉크를 만들어 한달뒤인 45년12월
10일 발행된 첫지폐인 10원권을 찍는 잉크로 사용케 한다.
노루표페인트 브랜드로 자동차용페인트및 산업용페인트를 생산하면서
급성장한 이 회사는 현재 대한페인트잉크 프라코 인터내셔날페인트등 9개
계열사를 거느린 거대기업이 됐다.
이들 기업처럼 해방동이로 태어나 여전히 중견이상을 유지하는 업체는
18개사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 대기업그룹으로 성장한 기업은 동아건설을 비롯 태평양그룹
해태그룹 한진그룹등이다.
해방초부터 지금까지 전문분야를 유지하는 기업은 중외제약 고려제강
선학알미늄 고려당 동일고무벨트 삼선공업 삼립식품 로케트정밀등이다.
지난 50년간 숱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이들 기업은 각각 독특한 수성책으로
기업을 키워왔다.
국내식품산업의 선구자인 해태제과는 동업이란 성공하면 깨진다는 일반적인
관념을 깬 기업이다.
해태를 창업한 박병규씨는 해방이 되자 민후식 신덕발씨와 주식을 똑같이
나눠갖고 사업을 시작했다.
해태제과를 설립해 지난 77년 타계할때까지 32년간 아무런 불화없이
동업체제를 지속했다.
해방직후 멋쟁이라면 이때나온 ABC포마드란 화장품을 안다.
이 제품은 당시 미국인이 유행시킨 헤어스타일과 절묘히 매치돼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이어나온 100번크림도 히트를 친다.
이들 제품은 45년9월 현 태평양그룹의 창업자인 서성환씨가 만든 것이다.
개성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서회장은 신용과 근검절약을 밑천으로 기업을
이끌어 현재는 태평양 태평양생명등 16개사를 거느린 그룹이 됐다.
이제 해방동이기업의 창업자가운데는 동아건설의 최준문씨처럼 고인이
됐거나 삼립식품의 허창성씨처럼 명예회장으로 물러난 경우도 많다.
다만 50년간 기업들의 부침가운데서도 꿋꿋이 회사를 지켜온 이면에는
창업자의 의욕과 신용이 큰 밑거름이 된 것으로 재계는 평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15일자).
25세의 한 젊은이가 인천 해안동2가9에 트럭 1대로 운송회사를 차렸다.
회사명은 한진상사.대한항공등 20여개의 계열회사를 거느리고 육해공을
장악하고 있는 한진그룹의 모태가 된 것이 바로 이회사다.
이른바 해방동이기업이다.
이 회사를 차린 조중훈씨는 해방전 휘문고보를 다니다 일본으로 건너가
후지나가다조선소에서 일하면서 수송선인 헤이안마루호를 타고 중국과
홍콩을 넘나들며 바깥세상을 살폈다.
그는 42년 귀국하기가 무섭게 서울 효제동에 공장을 차렸으나 일제의
기업정비령으로 곧 문을 닫고 말았다.
해방을 맞은 그는 화물선이 인천으로 실어오는 각종 화물을 내려 서울로
실어나르는 운수사업에 손대기로 마음을 굳히고 차린 것이 한진상사이다.
똑같은 11월1일 또다른 25세의 청년이 서울 회현동 작은 목조건물에
대한오브세트잉크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이 회사가 해방후 한국인의 손에 의해 설립된 최초의 잉크회사.
이날 간판을 내건 한정대씨는 최초의 국산잉크를 만들어 한달뒤인 45년12월
10일 발행된 첫지폐인 10원권을 찍는 잉크로 사용케 한다.
노루표페인트 브랜드로 자동차용페인트및 산업용페인트를 생산하면서
급성장한 이 회사는 현재 대한페인트잉크 프라코 인터내셔날페인트등 9개
계열사를 거느린 거대기업이 됐다.
이들 기업처럼 해방동이로 태어나 여전히 중견이상을 유지하는 업체는
18개사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 대기업그룹으로 성장한 기업은 동아건설을 비롯 태평양그룹
해태그룹 한진그룹등이다.
해방초부터 지금까지 전문분야를 유지하는 기업은 중외제약 고려제강
선학알미늄 고려당 동일고무벨트 삼선공업 삼립식품 로케트정밀등이다.
지난 50년간 숱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이들 기업은 각각 독특한 수성책으로
기업을 키워왔다.
국내식품산업의 선구자인 해태제과는 동업이란 성공하면 깨진다는 일반적인
관념을 깬 기업이다.
해태를 창업한 박병규씨는 해방이 되자 민후식 신덕발씨와 주식을 똑같이
나눠갖고 사업을 시작했다.
해태제과를 설립해 지난 77년 타계할때까지 32년간 아무런 불화없이
동업체제를 지속했다.
해방직후 멋쟁이라면 이때나온 ABC포마드란 화장품을 안다.
이 제품은 당시 미국인이 유행시킨 헤어스타일과 절묘히 매치돼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이어나온 100번크림도 히트를 친다.
이들 제품은 45년9월 현 태평양그룹의 창업자인 서성환씨가 만든 것이다.
개성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서회장은 신용과 근검절약을 밑천으로 기업을
이끌어 현재는 태평양 태평양생명등 16개사를 거느린 그룹이 됐다.
이제 해방동이기업의 창업자가운데는 동아건설의 최준문씨처럼 고인이
됐거나 삼립식품의 허창성씨처럼 명예회장으로 물러난 경우도 많다.
다만 50년간 기업들의 부침가운데서도 꿋꿋이 회사를 지켜온 이면에는
창업자의 의욕과 신용이 큰 밑거름이 된 것으로 재계는 평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