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50년] 한-일 경제불균형 : 상호이익 모색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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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50년.
옛말대로라면 강산이 다섯번쯤 바뀌었을 세월이다.
세월의 풍화작용은 한일관계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 왔다.
한국인에게 "침략자"로만 각인돼 있던 일본의 이미지는 "가깝고도 먼
이웃"을 거쳐 이제는 어느덧 "아태시대의 동반자"로까지 순화됐다.
그러나 양국관계를 규정짓는 용어중 끈질기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대일무역역조"가 바로 그것이다.
한일간 경제의 불균형을 대변하는 이 용어만큼은 세월의 풍화작용에서조차
벗어나 있다.
풍화작용은 커녕 동굴속의 종유석처럼 세월과 함께 그 부피가 갈수록
자라나고 있는 느낌이다.
지난 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30년간의 한일교역은 한국의 일방적인
적자로 점철돼 있다.
일본이 적자에 선 적은 단 한차례도 없다.
양국의 지난해 교역규모는 3백90억달러.
65년의 2억2천만달러에 비해 2백배 가까이 확대된 셈이다.
이에 비례해 한국의 대일무역적자도 1억4천만달러에서 1백18억7천만달러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 결과로 쌓인 누적적자는 올상반기중 마침내 1천억달러를 넘어섰다.
(6월말현재 1천27억달러)
특정 국가와의 무역수지는 양국 통화간 환율관계와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는게 경제학의 상식이다.
가령 원화가 일본 엔화에 대해 약세를 보이면 대일무역수지는 개선돼야
한다.
그러나 한일간 무역관계에서는 이같은 상식마저도 무너지고 만다.
원화는 89년말 1백엔당 4백72원에서 작년말에는 7백91원으로 67%나 평가
절하됐다.
그런데 대일무역적자는 90년 59억달러에서 매년 급증, 작년에는 1백18억
달러로 확대됐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국내 경기가 좋아지면 대일적자폭이 늘어나고 경기가
하락하면 적자도 줄어드는 식으로 경기흐름이 그대로 대일적자에 반영된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대일무역역조는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인 것이다.
이처럼 이제는 고착화돼버린 대일무역역조에 대한 한국정부의 문제의식은
국교정상화 이전인 61년에 작성된 양국정부의 차관관련 합의문에도 이미
나타나 있다.
이 문서에서 한국정부는 일본정부에 대해 한국으로부터의 수입확대를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대일무역역조가 그만큼 뿌리 깊은 현안임을 보여주는 증거자료다.
어느 정도 산업화가 이루어진 특정국가간에 이처럼 수십년에 걸쳐 일방적인
무역관계가 형성되는 것도 드문 일이다.
그러면 한일경제관계는 왜 이처럼 일방적인 불균형상태가 지속되는 것일까.
이에대해 한일양측이 다같이 인정하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은 한국의 자본재
및 부품산업이 지나치게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93년12월에 작성된 한일경제인포럼의 보고서에서도 이 문제를 첫째
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한국의 대일무역역조중 80%는 자본재와 원부자재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
이다.
한국은행이 90년을 기준으로 분석한 "대일수입의 산업연관효과"에 따르면
대일 수입유발계수는 0.049로 계산됐다.
수입유발계수는 제품 1단위를 생산할때 수입이 얼마나 발생하는지를 보여
주는 지표.
따라서 국산품 1백달러어치를 생산하려면 일본에서 4.9달러어치의 자본재나
원부자재를 수입해와야 한다는 계산이다.
특히 이 계수는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제품일 수록 크다.
영상음향기기는 0.216, 컴퓨터 사무기기는 0.195나 된다.
자본재의 대일의존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조사결과가 있다.
지난 92년 기계공업진흥회에서는 1천3백15개업체를 대상으로 시설보유현황
을 조사한 적이 있는데 그 결과 전체 설비의 25.6%가 일본제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산기계는 46.9%로 절반에도 못미쳤고 미제가 13.2%를 차지했다.
엔고에도 불구하고 대일역조가 심화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작년말 슈퍼엔고가 시작됐을때 국내기관들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엔화가 20% 절상될 경우 전체적으로는 약 30억달러의 무역수지개선효과가
있지만 대일무역수지만은 적자폭이 6억달러정도 늘어나는 것으로 계측됐다.
이같은 자본재의 대일종속과 관련해서는 그 연원을 대일청구권협상에서
찾는 이들도 있다.
즉 우리의 산업화는 대일청구권자금으로 시동을 걸었는데 이 자금이 일본제
설비라는 현물로 들어옴으로써 그 이후 일본제 설비가 한국산업을 지배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물론 자본재의 대일종속만이 한일무역불균형을 설명하는 유일한 요인은
아니다.
가령 최근 임금상승과 물류비용증가등 수출경쟁력약화로 중국및 동남아
국가에 일본시장을 빼앗기고 있는 것도 대일역조가 심화되는 큰 요인이다.
한국제품의 일본시장 점유율은 88년 6.3%에서 작년에는 4.8%로 급락했다.
이에따라 동아시아국가중 일본시장점유율 순위가 88년 1위에서 요즘은
중국 인도네시아에 이어 3위로 전락했다.
일본측도 한일교역 불균형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첫째가 소위 원-세트형이라 불리는 일본 특유의 산업구조다.
즉 일본은 기본원료등을 제외한 전 공산품의 자급자족형태를 갖추고 있어
일본의 제품수입비중은 여타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이다.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일본의 유통구조도 한국제품의 상륙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일본의 유통구조는 현대적 대형유통부문과 전근대적 중소형유통부문으로
대별되는데 양쪽 모두 외국기업의 침투가 매우 어렵다.
전자의 경우는 대기업 그룹이 생산과 유통을 수직적으로 결합, 계열화
시킴으로써 외국경쟁상품의 침투를 막고 있다.
전근대적 중소형 유통부문도 유통단계가 중첩화 다단계화 돼있어 여타
선진국에 비해 매우 높은 유통우회도를 보인다.
가령 미국의 경우 유통우회도가 0.99회, 영국은 2.09회, 프랑스는 1.5회
인데 비해 일본은 3.1회나 된다.
수입품이 최종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 3차례이상 중간유통단계를 거치는
것이다.
이처럼 한일간의 무역불균형은 어느 일방의 문제가 아니라 양측 모두가
원인제공자라 할 수 있다.
그중에도 한국측이 특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은 역시 자본재와
원부자재의 대일의존도이다.
가격경쟁력 약화 등 다른 요인은 일시적 현상이거나 상대방(일본)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이 문제만큼은 한국 스스로의 노력이 선행돼야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최근 자본재산업 육성정책을 마련하고 나선 것도 이런 인식에서다.
특히 최근에는 일본기업들도 엔고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기술이전을 수반한
한국기업과의 합작투자나 전략적 제휴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어 자본재의
대일종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호기로 여겨지고 있다.
[[[ 기술문제 ]]]
한일간 무역불균형의 1차적 요인이 자본재의 대일종속이라면 이를 극복하는
길은 자본재를 국산화하는 일이다.
그러려면 기술이 필요한데 바로 이 기술력의 차이가 한일간 무역의 추를
기울게하는 근본요인이 되고 있다.
물론 비메모리 반도체 생산기술같은 일부분야에서는 일본과 대등하거나
오히려 앞서가고 있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인 기술력은 형편없이
뒤져 있다.
지난 62년이후 한일간 기술교역현황을 보면 대일기술수출은 11건에 불과한
반면 기술도입은 4천2백5건에 달했다.
단순히 기술을 주고 받은 건수만이 아니라 각자가 보유한 기술수준도
현격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가령 공작기계분야의 기술수준을 보면 일본을 100으로 할 경우 한국은
60~70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설계기술은 일본의 40%수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하기야 "로봇이 로봇을 만든다"(파낙사)고 하는 일본기업들이니 이런
비교자체가 현재로서는 무의미하다.
문제는 그 격차가 더욱 벌어질 수 있다는데 있다.
양국의 연간 연구개발투자액이 한국은 76억달러(91년), 일본은 1천억달러
(92년)로 10배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이 일본과의 거리를 좁혀나가는 지름길은 일본의
기술을 도입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 또한 요즘에는 그리 수월치가 않다.
다시 62년이후의 기술도입내용을 들여다보면 일본으로부터의 기술도입은
전체 기술도입의 48.5%를 차지했다.
그러나 일본에 대해 지불한 기술도입로열티는 29억달러로 미국의 44억달러
에 크게 미달했다.
이는 일본에서 기술을 들여온 기업이 주로 중소기업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본이 주는 기술이 그만큼 저급기술이라는 얘기도 된다.
그나마 89년이후에는 일본으로부터의 기술도입이 계속 줄어들어 91년의
경우 2백77건으로 88년의 3백54건보다 77건이나 감소했다.
부메랑 효과를 의식, 일본기업들이 기술이전을 꺼리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일본기업들은 또 한국에 기술을 건네주면서 이런저런 조건은 미국등에 비해
까다롭게 요구하는 경향도 있다.
예를들면 그랜트 백 조항(개량 또는 개발된 기술을 기술제공측에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조항)이라든지 기술이전및 재실시금지조건, 원료등에 있어서의
구매선제한조건등이다.
이런 정황들은 일본기업들이 한국에 대한 기술이전을 기피한다는 추측을
가능케한다.
실제로 한일경제협회의 설문조사에서는 일본으로부터의 기술도입에 있어서
가장 큰 불만은 일본측이 핵심기술의 이전을 기피한다는 점인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일본기업들은 이에 대해 한국측에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92년에 있었던 한일경제포럼에서 한 일본기업인은 "기술을 주어도
제대로 된 품질의 상품이 나오지 않는 점이 중요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업체가 만드는 제품은 재료와 방법이 똑같은 경우도 일본제품에
못미친다는게 그의 주장이었다.
또 기술이전의 가장 유력한 수단인 합작투자가 쉽지 않은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한국은 민족자본육성이라는 과제에 너무 집착해 합작투자의 경우 한국측이
항상 경영권을 확보하려 들고 따라서 일본기업들이 투자를 꺼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일 양측의 인식도 많이 바뀌어 가고 있다.
한국 기업들중 상당한 기술수준에 이른 기업들이 속속 나오고 있는데다
혹독한 엔고로 인해 일본기업들도 기술독점만으로 버틸수는 없게 됐기 때문
이다.
한 예로 일본의 히타치는 시장전망이 불투명한 4메가D램의 설비증설 여부를
두고 고심하다 LG전자에 기술을 지원하여 호황시는 OEM방식으로 수입하고
불황시는 수입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투자리스크 분산에 성공했다.
첨단분야의 기술이전이 양국 모두에 이익이 될 수도 있다는 사례를 보여준
것이다.
[[[ 지원산업육성 ]]]
지난 1월 관서대지진이 발생했을때 국내 언론들은 일본의 지진피해가 국내
경제에 미칠 영향을 주요기사로 다뤘다.
그 내용은 대체로 반도체등은 반사이익을 얻는 반면 가전 중장비등은 부품
수입차질로 비상이 걸렸다는 것이었다.
바로 여기에 우리 경제가 일본에 끌려다닐 수 밖에 없는 또 하나의
"아킬레스 건"이 있다.
"지원산업(supporting industry)"이라고 통칭되는 부품산업의 취약성은
한일간 무역불균형이 논의될 때마다 일본측이 한국의 문제로 지적하는
단골메뉴다.
작년의 경우만 해도 부품소재분야의 대일교역은 수출 58억달러에 수입
1백42억달러로 84억달러의 적자를 나타냈다.
대일적자의 80%가 부품소재분야에서 발생한 셈이다.
이런 배경때문에 지난 93년 제2차 한일경제포럼때도 일본측은 "한국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지원산업의 육성"이라고 충고했다.
또 하구라 노부야 일한경제협회회장도 올연초 본지와의 대담에서 이 문제를
강조했다.
"한국은 공작기계나 부품류등 산업을 받쳐주는 지원산업이 취약하다. 일본
의 경우는 대기업이 있으면 그밑에 피라미드식으로 중소기업들이 발달해
있다. 그러나 한국은 피라미드의 정점은 있어도 이를 받쳐주는 구조가 성립
돼 있지 않다. 자본재나 부품메이커등 하부구조를 육성하는 것이 한국의
중요한 과제다"라는게 그의 충고였다.
그는 또 "일본기업들의 대한기술이전이 부진한 이유중 하나도 지원산업이
취약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 지원산업을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
이에대해 일본측은 한일간 협력보다는 한국의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협력
강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한일경제포럼에 참석했던 일본 장은총합연구소의 다케우치이사장은 일본의
경험이라며 "대기업의 협력업체 기술지도가 효과적"이라고 제언했다.
구체적으로는 하청업체에 대한 합동교육이나 순회지도팀에 의한 교육이
제시됐다.
그런데 이같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협력관계를 구축하는데 있어 한국은
기업제도상 일본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즉 일본은 중소기업의 계열화가 법적으로 보장되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가령 히타치의 경우 7백여 협력업체를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고 미쓰비시도
5백여 자회사를 갖고 있어 끈끈한 협력관계가 형성돼 있다.
그러나 한국은 협력업체의 지분을 10%이상 소유하지 못하게 돼있어 이런
관계를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한국이 경제면에서의 극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런 제도개선까지도
고려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게 한일 양국기업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 임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15일자).
옛말대로라면 강산이 다섯번쯤 바뀌었을 세월이다.
세월의 풍화작용은 한일관계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 왔다.
한국인에게 "침략자"로만 각인돼 있던 일본의 이미지는 "가깝고도 먼
이웃"을 거쳐 이제는 어느덧 "아태시대의 동반자"로까지 순화됐다.
그러나 양국관계를 규정짓는 용어중 끈질기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대일무역역조"가 바로 그것이다.
한일간 경제의 불균형을 대변하는 이 용어만큼은 세월의 풍화작용에서조차
벗어나 있다.
풍화작용은 커녕 동굴속의 종유석처럼 세월과 함께 그 부피가 갈수록
자라나고 있는 느낌이다.
지난 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30년간의 한일교역은 한국의 일방적인
적자로 점철돼 있다.
일본이 적자에 선 적은 단 한차례도 없다.
양국의 지난해 교역규모는 3백90억달러.
65년의 2억2천만달러에 비해 2백배 가까이 확대된 셈이다.
이에 비례해 한국의 대일무역적자도 1억4천만달러에서 1백18억7천만달러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 결과로 쌓인 누적적자는 올상반기중 마침내 1천억달러를 넘어섰다.
(6월말현재 1천27억달러)
특정 국가와의 무역수지는 양국 통화간 환율관계와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는게 경제학의 상식이다.
가령 원화가 일본 엔화에 대해 약세를 보이면 대일무역수지는 개선돼야
한다.
그러나 한일간 무역관계에서는 이같은 상식마저도 무너지고 만다.
원화는 89년말 1백엔당 4백72원에서 작년말에는 7백91원으로 67%나 평가
절하됐다.
그런데 대일무역적자는 90년 59억달러에서 매년 급증, 작년에는 1백18억
달러로 확대됐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국내 경기가 좋아지면 대일적자폭이 늘어나고 경기가
하락하면 적자도 줄어드는 식으로 경기흐름이 그대로 대일적자에 반영된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대일무역역조는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인 것이다.
이처럼 이제는 고착화돼버린 대일무역역조에 대한 한국정부의 문제의식은
국교정상화 이전인 61년에 작성된 양국정부의 차관관련 합의문에도 이미
나타나 있다.
이 문서에서 한국정부는 일본정부에 대해 한국으로부터의 수입확대를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대일무역역조가 그만큼 뿌리 깊은 현안임을 보여주는 증거자료다.
어느 정도 산업화가 이루어진 특정국가간에 이처럼 수십년에 걸쳐 일방적인
무역관계가 형성되는 것도 드문 일이다.
그러면 한일경제관계는 왜 이처럼 일방적인 불균형상태가 지속되는 것일까.
이에대해 한일양측이 다같이 인정하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은 한국의 자본재
및 부품산업이 지나치게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93년12월에 작성된 한일경제인포럼의 보고서에서도 이 문제를 첫째
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한국의 대일무역역조중 80%는 자본재와 원부자재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
이다.
한국은행이 90년을 기준으로 분석한 "대일수입의 산업연관효과"에 따르면
대일 수입유발계수는 0.049로 계산됐다.
수입유발계수는 제품 1단위를 생산할때 수입이 얼마나 발생하는지를 보여
주는 지표.
따라서 국산품 1백달러어치를 생산하려면 일본에서 4.9달러어치의 자본재나
원부자재를 수입해와야 한다는 계산이다.
특히 이 계수는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제품일 수록 크다.
영상음향기기는 0.216, 컴퓨터 사무기기는 0.195나 된다.
자본재의 대일의존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조사결과가 있다.
지난 92년 기계공업진흥회에서는 1천3백15개업체를 대상으로 시설보유현황
을 조사한 적이 있는데 그 결과 전체 설비의 25.6%가 일본제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산기계는 46.9%로 절반에도 못미쳤고 미제가 13.2%를 차지했다.
엔고에도 불구하고 대일역조가 심화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작년말 슈퍼엔고가 시작됐을때 국내기관들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엔화가 20% 절상될 경우 전체적으로는 약 30억달러의 무역수지개선효과가
있지만 대일무역수지만은 적자폭이 6억달러정도 늘어나는 것으로 계측됐다.
이같은 자본재의 대일종속과 관련해서는 그 연원을 대일청구권협상에서
찾는 이들도 있다.
즉 우리의 산업화는 대일청구권자금으로 시동을 걸었는데 이 자금이 일본제
설비라는 현물로 들어옴으로써 그 이후 일본제 설비가 한국산업을 지배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물론 자본재의 대일종속만이 한일무역불균형을 설명하는 유일한 요인은
아니다.
가령 최근 임금상승과 물류비용증가등 수출경쟁력약화로 중국및 동남아
국가에 일본시장을 빼앗기고 있는 것도 대일역조가 심화되는 큰 요인이다.
한국제품의 일본시장 점유율은 88년 6.3%에서 작년에는 4.8%로 급락했다.
이에따라 동아시아국가중 일본시장점유율 순위가 88년 1위에서 요즘은
중국 인도네시아에 이어 3위로 전락했다.
일본측도 한일교역 불균형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첫째가 소위 원-세트형이라 불리는 일본 특유의 산업구조다.
즉 일본은 기본원료등을 제외한 전 공산품의 자급자족형태를 갖추고 있어
일본의 제품수입비중은 여타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이다.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일본의 유통구조도 한국제품의 상륙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일본의 유통구조는 현대적 대형유통부문과 전근대적 중소형유통부문으로
대별되는데 양쪽 모두 외국기업의 침투가 매우 어렵다.
전자의 경우는 대기업 그룹이 생산과 유통을 수직적으로 결합, 계열화
시킴으로써 외국경쟁상품의 침투를 막고 있다.
전근대적 중소형 유통부문도 유통단계가 중첩화 다단계화 돼있어 여타
선진국에 비해 매우 높은 유통우회도를 보인다.
가령 미국의 경우 유통우회도가 0.99회, 영국은 2.09회, 프랑스는 1.5회
인데 비해 일본은 3.1회나 된다.
수입품이 최종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 3차례이상 중간유통단계를 거치는
것이다.
이처럼 한일간의 무역불균형은 어느 일방의 문제가 아니라 양측 모두가
원인제공자라 할 수 있다.
그중에도 한국측이 특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은 역시 자본재와
원부자재의 대일의존도이다.
가격경쟁력 약화 등 다른 요인은 일시적 현상이거나 상대방(일본)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이 문제만큼은 한국 스스로의 노력이 선행돼야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최근 자본재산업 육성정책을 마련하고 나선 것도 이런 인식에서다.
특히 최근에는 일본기업들도 엔고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기술이전을 수반한
한국기업과의 합작투자나 전략적 제휴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어 자본재의
대일종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호기로 여겨지고 있다.
[[[ 기술문제 ]]]
한일간 무역불균형의 1차적 요인이 자본재의 대일종속이라면 이를 극복하는
길은 자본재를 국산화하는 일이다.
그러려면 기술이 필요한데 바로 이 기술력의 차이가 한일간 무역의 추를
기울게하는 근본요인이 되고 있다.
물론 비메모리 반도체 생산기술같은 일부분야에서는 일본과 대등하거나
오히려 앞서가고 있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인 기술력은 형편없이
뒤져 있다.
지난 62년이후 한일간 기술교역현황을 보면 대일기술수출은 11건에 불과한
반면 기술도입은 4천2백5건에 달했다.
단순히 기술을 주고 받은 건수만이 아니라 각자가 보유한 기술수준도
현격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가령 공작기계분야의 기술수준을 보면 일본을 100으로 할 경우 한국은
60~70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설계기술은 일본의 40%수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하기야 "로봇이 로봇을 만든다"(파낙사)고 하는 일본기업들이니 이런
비교자체가 현재로서는 무의미하다.
문제는 그 격차가 더욱 벌어질 수 있다는데 있다.
양국의 연간 연구개발투자액이 한국은 76억달러(91년), 일본은 1천억달러
(92년)로 10배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이 일본과의 거리를 좁혀나가는 지름길은 일본의
기술을 도입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 또한 요즘에는 그리 수월치가 않다.
다시 62년이후의 기술도입내용을 들여다보면 일본으로부터의 기술도입은
전체 기술도입의 48.5%를 차지했다.
그러나 일본에 대해 지불한 기술도입로열티는 29억달러로 미국의 44억달러
에 크게 미달했다.
이는 일본에서 기술을 들여온 기업이 주로 중소기업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본이 주는 기술이 그만큼 저급기술이라는 얘기도 된다.
그나마 89년이후에는 일본으로부터의 기술도입이 계속 줄어들어 91년의
경우 2백77건으로 88년의 3백54건보다 77건이나 감소했다.
부메랑 효과를 의식, 일본기업들이 기술이전을 꺼리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일본기업들은 또 한국에 기술을 건네주면서 이런저런 조건은 미국등에 비해
까다롭게 요구하는 경향도 있다.
예를들면 그랜트 백 조항(개량 또는 개발된 기술을 기술제공측에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조항)이라든지 기술이전및 재실시금지조건, 원료등에 있어서의
구매선제한조건등이다.
이런 정황들은 일본기업들이 한국에 대한 기술이전을 기피한다는 추측을
가능케한다.
실제로 한일경제협회의 설문조사에서는 일본으로부터의 기술도입에 있어서
가장 큰 불만은 일본측이 핵심기술의 이전을 기피한다는 점인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일본기업들은 이에 대해 한국측에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92년에 있었던 한일경제포럼에서 한 일본기업인은 "기술을 주어도
제대로 된 품질의 상품이 나오지 않는 점이 중요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업체가 만드는 제품은 재료와 방법이 똑같은 경우도 일본제품에
못미친다는게 그의 주장이었다.
또 기술이전의 가장 유력한 수단인 합작투자가 쉽지 않은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한국은 민족자본육성이라는 과제에 너무 집착해 합작투자의 경우 한국측이
항상 경영권을 확보하려 들고 따라서 일본기업들이 투자를 꺼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일 양측의 인식도 많이 바뀌어 가고 있다.
한국 기업들중 상당한 기술수준에 이른 기업들이 속속 나오고 있는데다
혹독한 엔고로 인해 일본기업들도 기술독점만으로 버틸수는 없게 됐기 때문
이다.
한 예로 일본의 히타치는 시장전망이 불투명한 4메가D램의 설비증설 여부를
두고 고심하다 LG전자에 기술을 지원하여 호황시는 OEM방식으로 수입하고
불황시는 수입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투자리스크 분산에 성공했다.
첨단분야의 기술이전이 양국 모두에 이익이 될 수도 있다는 사례를 보여준
것이다.
[[[ 지원산업육성 ]]]
지난 1월 관서대지진이 발생했을때 국내 언론들은 일본의 지진피해가 국내
경제에 미칠 영향을 주요기사로 다뤘다.
그 내용은 대체로 반도체등은 반사이익을 얻는 반면 가전 중장비등은 부품
수입차질로 비상이 걸렸다는 것이었다.
바로 여기에 우리 경제가 일본에 끌려다닐 수 밖에 없는 또 하나의
"아킬레스 건"이 있다.
"지원산업(supporting industry)"이라고 통칭되는 부품산업의 취약성은
한일간 무역불균형이 논의될 때마다 일본측이 한국의 문제로 지적하는
단골메뉴다.
작년의 경우만 해도 부품소재분야의 대일교역은 수출 58억달러에 수입
1백42억달러로 84억달러의 적자를 나타냈다.
대일적자의 80%가 부품소재분야에서 발생한 셈이다.
이런 배경때문에 지난 93년 제2차 한일경제포럼때도 일본측은 "한국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지원산업의 육성"이라고 충고했다.
또 하구라 노부야 일한경제협회회장도 올연초 본지와의 대담에서 이 문제를
강조했다.
"한국은 공작기계나 부품류등 산업을 받쳐주는 지원산업이 취약하다. 일본
의 경우는 대기업이 있으면 그밑에 피라미드식으로 중소기업들이 발달해
있다. 그러나 한국은 피라미드의 정점은 있어도 이를 받쳐주는 구조가 성립
돼 있지 않다. 자본재나 부품메이커등 하부구조를 육성하는 것이 한국의
중요한 과제다"라는게 그의 충고였다.
그는 또 "일본기업들의 대한기술이전이 부진한 이유중 하나도 지원산업이
취약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 지원산업을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
이에대해 일본측은 한일간 협력보다는 한국의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협력
강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한일경제포럼에 참석했던 일본 장은총합연구소의 다케우치이사장은 일본의
경험이라며 "대기업의 협력업체 기술지도가 효과적"이라고 제언했다.
구체적으로는 하청업체에 대한 합동교육이나 순회지도팀에 의한 교육이
제시됐다.
그런데 이같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협력관계를 구축하는데 있어 한국은
기업제도상 일본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즉 일본은 중소기업의 계열화가 법적으로 보장되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가령 히타치의 경우 7백여 협력업체를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고 미쓰비시도
5백여 자회사를 갖고 있어 끈끈한 협력관계가 형성돼 있다.
그러나 한국은 협력업체의 지분을 10%이상 소유하지 못하게 돼있어 이런
관계를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한국이 경제면에서의 극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런 제도개선까지도
고려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게 한일 양국기업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 임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