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 서울 서소문동 유원건설 사무실엔 정태수한보그룹총회장의
대형사진 액자 40여개가 걸리기 시작했다.

지난 6월 한보로 넘어간 유원건설 직원들은 씁쓸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정말 주인이 바뀌기는 바뀌었구나". 그러면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은
한보의 독특한 경영스타일에 호기심어린 눈길을 보냈다.

"오너 사진을 사무실에 거는 회사도 있었구나".

한보는 경영스타일에 관한 한 좀 별나다.

사무실마다 정총회장의 사진을 건다.

그것도 두루마기를 입고 가슴에 꽃까지 단 자연스런 사진을.. 또 하나
재미있는건 창립기념일이다.

이 그룹의 창립기념일은 바로 정총회장의 생일(음력 1월21일)이다.

그래서 양력으론 창립일이 매해 바뀐다.

더 흥미로운 건 한보직원들의 반응이다.

"창립일이야 여러회사를 인수하다 보니 마땅한 날이 없어 그랬고 총회장
사진은 안방에 아버지 사진을 거는 것과 뭐가 다르냐"는 식이다.

이처럼 한보사람들은 회사를 집으로, 회장은 아버지 정도로 생각한다.

정총회장의 "가부장 경영"을 잘 보여주는 단면인 셈이다.

정총회장은 실제로 직원들을 한 가족같이 여긴다.

치명적인 문제가 없는 한 사람을 잘자내지 않는 것도 그래서다.

현재 조원제승보엔지니어링 부사장(76)을 비롯 70세를 넘긴 임원만 4명에
달한다.

올해부터는 "평생사원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평생사원을 선정, 이들에겐 퇴직후 종신토록 매년 1억원씩 연금을
지급키로 한 것. 또 정총회장이 매년 추석무렵 50여명의 미망인들과
다과회를 갖는다.

이들은 한보가 70년대 중반 건설업을 시작하면서 현장에서 순직한
직원들의 부인. 정총회장의 지극한 "부정"을 엿볼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91년 수서사건으로 회사가 위기에 처했을때도 회사를 떠난 사람은
고작 5%도 안됐다.

오히려 사무직 사원들까지 아파트 건설현장에 나가 벽돌을 날랐다.

집안이 어려울때 가족들이 힘을 합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한보가족이 된지 9년째라는 한 과장의 말은 이 그룹의 고속성장 저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짐작케 한다.

< 차병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17일자).